2024년 09월 29일(일)

18년 전 오늘, 14살 여중생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2002년, 그해 6월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치러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은 16강 진출을 이루기 위해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8년 전인 2002년 6월 13일,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하루 앞둔 이 날.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신효순과 심미선 두 학생이 경기 양주군(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 갓길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사건 당일 미 육군 제8군은 바로 수습에 나섰다. 미 8군 사령관이 직접 유감을 표명했고 다음 날에는 미 육군 제2보병사단 참모장 등이 분향소를 직접 방문해 사고 수습에 나섰다. 


피해 유가족들에게는 조의금과 보상금 등 2억 원이 지급됐다. 


이어 두 학생이 세상을 떠난 지 6일이 지나 사고에 대한 한미 합동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고는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것이 아닌 비극적인 사고', 즉 과실 사고로 결론 지어졌다.


장갑차 조종수가 두 여중생을 확인하지 못했을뿐더러 전차장의 통신 장애까지 겹쳐 피치 못하게 발생한 사건이라는 이유였다. 


인사이트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그해 11월 동두천 미군 기지 '캠프 케이시'에서 사고를 낸 두 미군에 대한 재판이 이뤄졌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SOFA) 따라 사고 가해자인 두 장병은 한국이 아닌 미국의 군사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두 장병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 소식에 월드컵의 열기가 식어가던 거리는 다시 시민들로 가득 찼다. 당시 미군의 태도와 불평등한 SOFA 협정에 시민들은 항의했다. 


압사당한 두 소녀의 사진은 국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어느 날부터인가 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화문 앞 광장을 가득 메웠고 이는 우리나라의 첫 촛불 집회로 기록됐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사고를 낸 장갑차 조종수 또한 편치 않은 삶을 살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희생자 미선 양의 아버지는 지난 2012년 "얼굴도 모르지만 이제 그 미군들도 마음의 짐을 덜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그들의 아픔까지 끌어안았다. 


딸을 잃은 아픈 심정을 억누른 그의 이 한마디는 당시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한편 경기도는 13일 사고 현장에 조성된 효순·미선평화공원에 18주기 추모제와 평화공원 준공식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