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동대학살 당시 자경단에 의해 피살된 한인 희생자의 묘가 일본과 한국 두 군 데서 92년 만에 발견됐다.
이진희 이스턴일리노이대 교수는 22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한일협정 50년사 재조명' 국제학술회의에서 "'일본진재시 피살자 명부'(관동 대학살 피살자 이름을 담은 책)와 '3·1 운동시 피살자 명부' 등을 대조한 결과 관동대학살 당시 일본에서 참살당한 강대흥(당시 24세) 씨의 묘가 일본과 한국 두 군데 마련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1923년 9월 1일 관동 대지진 이후 온갖 유언비어가 퍼지는 상황에서 사이타마현 경찰에 의해 다른 조선인과 함께 군마현으로 이동하던 중 같은 달 4일 사이타마현 자경단에 의해 피살됐다.
이후 사이타마현 주민은 무자비한 학살에 대한 책임감과 반성의 의미로 강씨 등 희생자의 묘를 만들었고 매년 9월 추모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 수 없던 강씨의 유족은 그가 실종된 것으로 생각해 고향인 경남 함안에 유골 없는 가묘를 만들어둔 상태였다.
이 사실은 이 교수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국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등의 도움으로 '일본진재시 피살자 명부'와 '3·1 운동시 피살자 명부'에서 이름과 나이가 같은 희생자를 대조한 끝에 알려지게 됐다.
via 동북아역사재단
강씨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지 92년 만이다.
이 교수는 "강씨의 두 개의 묘는 한일협정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인은 무엇을 해왔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 교수는 '일본의 식민 책임, 그리고 역사와 국제법에서의 위안부' 발표에서 "1930∼1940년대 일본군에 의해 강제동원된 성노에에 대한 일본의 국가 책임을 둘러싼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든 교수는 "일각에서는 도덕적 책임이 우선이냐 법적 책임이 우선이냐를 놓고 논쟁이 있다"며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나아가 모든 성노예 피해자의 인권을 위해서는 일본이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이바라키대 명예교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후(戰後) 70년 담화'(아베담화)가 앞으로의 동아시아 평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봤다.
아라이 교수는 "같은 과거를 반복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것에서 화해가 시작돼야 한다"며 "아베담화가 화해로 가는 지팡이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학술회의는 한일 역사갈등의 본질을 규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동북아역사재단이 2011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시행해왔으며 올해가 마지막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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