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한국인이 롯데를 일본 기업이라고 불러야 하는 '결정적' 이유

인사이트(좌) 롯데 신동빈 회장의 모습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우) 일본 불매 운동을 하는 시민의 모습 / 뉴스1


[인사이트] 김천 기자 =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국내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롯데가 때아닌 타격을 입고 있다. 사실상 '일본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국내 5대 그룹으로 불리는 롯데가 일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지분 때문이다.


롯데의 주인은 두 개로 나뉘어 진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7년 10월 신동빈 롯데 회장이 만든 '롯데지주'와 롯데지주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군림했던 '호텔롯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곳은 호텔롯데다.


국내의 수많은 롯데 계열사(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푸드를 제외한 나머지)를 거느리는 호텔롯데는 완벽한 일본 자본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15년 롯데 후계자들이 경영권을 다투면서 언론에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호텔롯데의 지분은 99.28%가 일본 소유다.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 롯데홀딩스 19.07%, 일본 주식회사 L투자회사 72.65%, 일본 광윤사 5.45%, 일본 패미리 2.11% 등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주장하는 말처럼 실질적으로 롯데를 지배하는 회사 지분이 일본 소유라면 롯데가 일본 기업이라는 목소리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우리 몸에 비유하면 팔, 다리, 눈, 코, 입 등을 통제하는 핵심 요소인 머리가 일본 소유인 셈이니 말이다.


인사이트욱일기를 동원한 롯데의 해외 광고 / 온라인 커뮤니티


그렇다면 지주회사 지분이 일본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롯데가 일본 기업이라고 불릴까. 아니다. 롯데의 뿌리가 일본에 있다는 점도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롯데 창업주 신격호는 지난 1941년 일본에 건너가 화장품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화장품 대신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껌을 선택했다. 신격호가 생산하는 껌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당시 츄잉껌이라는 분야가 생소했던 일본에서는 신격호의 껌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새벽부터 줄을 서서 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사업을 계기로 신격호는 자신의 사업체를 주식회사로 바꾸게 된다. 회사의 이름은 독일의 소설가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인 샤롯데에서 '샤'를 뺀 '롯데'로 명명했다.


롯데는 일본에서 승승장구했다. 이어 사업을 확장해 일본 자본의 힘으로 한국까지 진출하게 된다. '한국 재벌 흑역사(2018)'에 따르면 신격호는 1959년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껌 공장을 세우고 주식회사 롯데라는 회사명으로 한국 사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분명 롯데의 주력 시장은 일본이었다.


그러던 1966년,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였던 장기영은 신격호를 만나 한국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신격호는 롯데의 전문 분야였던 껌과 제과를 주력으로 투자하기로 하고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한국 진출을 본격화했다.


한국에 진출한 롯데는 박정희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결과 일본보다 더욱 큰 성과를 내면서 주객이 전도하게 된다. 주력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국민들은 롯데를 친숙하게 접했다. 롯데에서 나온 과자를 먹고 음료수를 마셨으며 롯데에서 운영하는 백화점을 가고 롯데의 금융 상품을 이용하게 됐다. 일본 자본이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에 있는 던킨도너츠, 스타벅스 등과 같은 브랜드가 우리 기업이 아닌 것처럼 롯데도 우리 기업이 아니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롯데를 일본 기업이라고 보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간접적이지만 롯데 회장 자리를 두고 차남 신동빈(현 롯데 회장)과 장남 신동주(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가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모습에서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경영권 분쟁 당시 재계에서는 신동빈이 롯데 그룹의 전체 90%를 차지하는 한국 롯데를 상속받고 신동주는 나머지 10%의 일본 롯데를 상속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신동빈은 9:1이라는 상속 비율을 받아들이지 않고 형의 10%를 빼앗으려 했다. 자산 90%를 차지하는 한국 롯데를 맡아도 롯데를 경영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주식회사는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가 지배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롯데를 지배하는 최상층에는 일본 롯데가 있다. 상법상 주인은 일본 롯데라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신동빈이 신동주의 10%를 빼앗으려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동빈이 신동주의 10%를 가져갔다. 그렇다고 일본 자본이 완벽히 신동빈의 손에 들어온 건 아니다. 회장이 바뀌었을 뿐 일본 자본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두 눈을 뜨고 있다. 일본 자본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 박쥐처럼 태도를 바꿀 여지가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인정받은 것도 한몫한다. 외국인 투자 기업은 주식 10% 이상을 외국인 혹은 외국 법인이 가지고 있으면 등록할 수 있다. 제일기획, 호텔신라, 한화토탈 등도 모두 외국인 투자 기업이다.


이는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국외 자본이 들어오게 되면서 생기는 현상인데 롯데는 이야기가 다르다. 롯데는 애초에 일본 자본으로 세워진 회사고 일본 자본으로 한국에 온 회사다.


롯데의 계열사인 롯데물산은 1987년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호텔롯데는 1990년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인정받아 법인세와 소득세 등을 감면받고 각종 혜택을 누렸다. 


다른 기업이 글로벌 시대를 맞이해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선정됐다면 롯데는 일본에서 시작했으며 일본에 기반을 둔 기업이기 때문에 다른 외국인 투자 기업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될 수 없다. 분명 롯데는 다른 기업과 차별적인 케이스로 외국 투자 기업 혜택을 누렸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롯데는 사실상 '일본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롯데가 한국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점도 있다. 롯데 지배 구조를 롯데지주와 호텔롯데 2개로 나눴다는 부분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최상층은 아직도 일본 자본에 있다는 건 변함없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롯데가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사이트일본 불매 운동에 관한 질문에 손사래 치며 답변을 거부하는 롯데 신동빈 회장의 모습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