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형주 기자 = 일본 정부가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를 볼모 삼아 대한(對韓)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우리 반도체 업계가 크게 긴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구원투수'로 나서주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대상 품목인 반도체 소재를 공급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지난 12일 한겨레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를 우리 기업에 공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불화수소를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을 우리 정부에 전해왔다.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은 러시아가 일본보다 더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역시 러시아의 제안을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정부는 일본이 불화수소를 일시적으로 공급하지 않았던 지난해 11월 이후 다른 수입 경로를 찾아왔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계 주요 인사 간담회에서도 러시아산 불화수소의 수입 문제가 언급됐다. 당시 간담회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불화수소는 반도체의 제조 과정에서 에칭(회로의 패턴 중 필요한 부분만 남기는 것) 등에 쓰인다. 순도 99.999%를 유지해야 반도체 수율(생산품 대비 완벽한 제품의 비율)이 높아진다.
일본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와 함께 불화수소를 수출규제 대상 품목에 지정했다.
우리 수입 품목 중 일본산의 비중은 레지스트가 83.2%,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84.5%, 불화수소는 41.9%에 이른다.
만약 러시아의 공급 제안이 성사되면 일본의 수출 규제에도 국내 기업이 받을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급사를 바꾸면 수율을 높이기 위한 시험 기간이 필요해 당분간 반도체 생산량의 감소는 불가피하다. 불화수소는 민감한 물질이라 테스트 기간만 2개월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업계에서도 불화수소를 국산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해봤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2010년대 초반 불화수소 공장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한 뒤 규제가 강화돼 진일보하지 못했다.
2010년 현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신인 지식경제부는 2015년까지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 35%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017년 기준 국산화율은 18%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