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퍼져 생명이 다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고통을 참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던 레슬링 선수가 재조명되고 있다.
1994년 10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12회 아시안게임' 그레코로만형 100kg급 레슬링에서 한국의 송성일 선수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카자흐스탄의 레이키네프 선수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따낸 짜릿한 승리였다.
이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송성일 선수는 1992년과 1993년 두 번의 아시안 선수권 대회에 이어 아시안 게임까지 3회 연속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그레코로만형 100kg급 레슬링에서 아시아 최정상 선수가 된 것이다.
이에 송성일 선수 본인을 물론이거니와 그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기대는 2년 뒤 열릴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에 모아졌다.
벅찬 심정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왔을 송성일 선수. 그러나 그는 귀국 후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했다.
진찰 결과 그의 병은 위암 4기였다.
일반적으로 4기에 접어든 위암은 완치될 가능성이 10%밖에 안될뿐더러 생존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송성일 선수는 위암이 크게 진행돼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아시안게임 출전 전 위암 4기에 접어든 송성일 선수는 참기 힘든 고통이 있었음에도 병원을 찾아가지 않아 병을 키웠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송성일 선수는 음식을 삼킬 때마다 심한 복통을 느꼈지만 위궤양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혹여 소화제라도 먹게 될 경우 도핑 테스트에 걸려 실격당할까 봐 병원은 물론 약도 복용하지 않고 고통을 감내했다.
송성일 선수는 그 심한 통증을 안고서도 이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레슬링 강국 선수들을 차례로 이기고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귀국 후 결국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한 그는 3시간 30분의 대수술을 받고도 열흘 만에 퇴원해 건강을 금방 회복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신에게 쏟아진 커다란 관심 때문인지 그는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고 병세는 다시 악화됐다. 위암으로 인한 고통은 더욱 심해져 신경 차단 수술까지 받았다.
송성일 선수는 이러한 고통의 나날 속에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모든 시합은 끝나봐야 아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악착같이 살 거라고요"라며 밝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국민들은 송성일 선수가 회복해 그를 다시 레슬링 경기장에서 볼 수 있길 희망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염원에도 그의 마지막은 머지않아 다가왔다.
스스로도 얼마 남지 않음을 느꼈던 송성일 선수는 안구 등의 장기 기증을 원했으나 온몸으로 암세포가 전이돼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결국 젊고 유망했던 선수는 25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비록 살아있는 송성일 선수의 밝은 얼굴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최고를 꿈꾸는 많은 선수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