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누구한테도 쉽게 말 못 할 상처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낙태 경험'입니다.
저는 과거에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원치 않았던 임신을 2번이나 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자친구가 아이를 책임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어요. 낙태 강요였던 거죠.
저 역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말까지 듣게 되니 결국 낙태를 결정하게 됐고요.
그런데 2번째 낙태 후 남자친구는 사실 제게 마음이 식었다면서 매몰차게 저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이후 저는 정신과 상담까지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얼마 전 그 남자친구의 SNS에서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만난 기간을 대충 헤아려보니 저와 헤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귄 거더군요.
고민 끝에 저는 새 여친에게 DM을 보내 이 모든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전 남친이 미워서가 아닌 같은 여자로서 새 여친이 너무 안타까워서요.
새 여친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던데 한편으론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게 맞는 거겠죠?
[인사이트] 박아영 기자 = 위 내용은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민을 재구성한 글이다.
사연 속 주인공 A씨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새 여친에게 전 남친과의 낙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오히려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두 여성 모두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A씨에게 먼저 "정말 잘했다"는 말과 함께 위로를 전했다.
누군가가 곁에서 다독여줘도 모자랄 시간에 배신감까지 더해 힘든 나날을 혼자 버텨냈기 때문이다.
또 누리꾼들은 새 여친에게는 "전 여친이 당신의 미래를 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여친에게 한 행동은 언젠가 새 여친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혼란스럽겠지만 무책임한 행동에다가 일말의 죄책감조차 가지지 않는 사람을 끊어낼 기회기도 하다.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낙태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201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16세부터 44세까지 가임기 여성 2,006명 중 21%인 422명이 낙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5명 중 1명꼴이다. 위 사연과 같은 고민을 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두 이런 고민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해당 사연에 한 누리꾼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도 과거 나름이고, 이별에도 예의는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언젠간 자신에게 돌아오게 돼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