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엄마 아빠, 잘 다녀올게요"···세월호 참사에 한 시인이 남긴 추모 시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떠난 자들 뒤에는 잊히지 않을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가족'들이 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그림자처럼 지워진 사건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오늘 일어난 일과 다름없는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5년이 지났다. 선박은 바다 위로 올라왔고, 몇몇의 유골은 제 자리를 찾았다.


이준석 선장은 매일 죄책감에 휩싸여 자책한다는 옥중 편지를 공개했다. 그렇다고 떠나간 이들이 돌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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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주기, 많은 것이 변했지만 아직도 슬픔은 제자리를 맴돈다. 더불어 과거 공개됐던 추모 시가 재조명되며 많은 이들을 서글프게 만든다.


해당 시는 지난 2014년 공개된 한국작가회의 애도 시 연속 기고에 등장했던 작품이다.


"몸은 여기 두고 250개의 물방울이 되어

홀가분하게 떠나요

무사히 돌아오는 그날

엄마 아빠 안 계시면 우린 무척 슬플 거예요"


인사이트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잊지 못할 이들을 그리며 시인 안상학이 남긴 절절한 시구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 시를 읽으며 돌아올 수 없는 바다를 건넌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여전히 슬픔 속에 갇혀 떠난 아들을, 딸을, 아내를 그리워하는 가족들에 대한 위로도 좋다.


떠나간 이들의 명복을 비는 날, '합리'로 포장된 칼날 같은 말은 삼가도록 하자.


아래는 한국작가회의 애도 시 연속 기고 전문이다.


엄마 아빠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잊지 못할 단원고 250꽃들을 그리며


엄마 아빠

부탁이 있어요

우리 없다고 이 나라를 떠나지는 마세요

우리는 죽지 않았어요

검은 리본은 싫어요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우리는 지금

천년의 장미를 찾아 수학여행 떠나는 길이에요

엄마 아빠도 아시잖아요

천년의 장미를 찾아 돌아오는 날까지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몸은 여기 두고 250개의 물방울이 되어

홀가분하게 떠나요

무사히 돌아오는 그날

엄마 아빠 안 계시면 우린 무척 슬플 거예요

우리에겐

더 이상 차가운 벽은 없어요

제주도에서 한 사흘 머물다가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알래스카로 갈 거예요

250마리 연어가 되어 뛰놀다가

북태평양 캘리포니아를 거쳐

엘살바도르 앞바다 적도 어디쯤

250자락 바람이 되어 북극으로 달려갈 거예요

250개의 오로라가 되어

흰곰과 썰매개랑 한 판 춤을 출 거예요

한 개의 해님과 한 개의 달님에게 부탁해

기념사진도 찍을 거예요

250개의 낮 250개의 밤

서로의 주인공이 되어 동영상도 찍을 거예요

우리에겐 더 이상

차가운 유리창도 없어요

때가 되면 기다리지 않고

250마리 도요새가 되어 날아오를 거예요

세상의 해안선이란 해안선은 다 돌아

인도양으로 갈 거예요

250개의 눈 푸른 사파이어가 되어

난바다 노닐다

계절풍 건듯 불면

250마리 인도기러기가 되어 히말라야를 넘을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골마을로 가

250마리 할단새가 될 거예요

어두운 밤 환한 아침을 부르는

250개의 노래를 부를 거예요

추운 겨울 따뜻한 봄을 부르는

250개의 이름을 부를 거예요

250개의 아침을 맞이할 거예요

250개의 봄을 맞이할 거예요

그날이 오면

250송이 천년의 장미는 따서 머리에 꽂고

250송이 천년의 장미는 따서 품에 품고

250개의 새털구름이 되어 날아오를 거예요

우리에겐 더 이상

차가운 천장도 바닥도 없어요

250자락 바람을 타고

250개의 낮과 밤을 지나

한반도로 돌아올 거예요

그때는 우리

단 한 개의 거대한 비구름이 될 거예요

그날은

크나큰 리본을 닮은 우리 한반도가

온통 노란색이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 가슴에 단

노란 리본이 물들인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엄마들 아빠들이 바라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땐 기다리지 않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250개의 빗방울이 되어 뛰어내리겠어요

엄마 아빠 노란 리본에 스며들어

천년의 장미를 피워드리겠어요

한반도 노란 리본 매듭에 스며들어

천년의 장미를 꽃 피워 올리겠어요

너희들은 죽지 않았다고

말해 주세요

우리는 말 잘 듣는 아이들인 걸 아시잖아요

그래요 엄마 아빠

우리는 죽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검은 리본은 싫어요

우리가 돌아오는 그날까지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이 땅을 떠난다는 말씀만은 말아주세요

우리는 꼭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깐 너무 가슴 졸여 기다리진 마시고요

같이 못 간 친구들에게도 너무 슬퍼하진 말라고 전해주세요

지금 우리는 250개의 물방울이 되어

천년의 장미를 찾아 떠나요

잘 다녀올게요 잘 다녀들 올게요

엄마 아빤 다만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

(2014. 5. 12. 안상학 삼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