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박아영 기자 = 2019년 4월 16일인 오늘은 '세월호 참사' 5주기이다.
전국 곳곳에서 당시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가운데, 지난 5년간 단 하루도 그날을 잊지 못했던 이들이 있다.
바로 유가족들이다. 그중에서도 시신조차 찾지 못한 미수습자 가족은 더욱 눈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0월 19일, 미수습자 5명을 끝내 수습하지 못한 채 세월호의 수색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영원히 가슴 속에 묻어둬야만 했던 그 이름은 남현철 군, 박영인 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이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 이러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러본다.
1. 박영인 군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6반에 재학 중이던 박영인 군은 운동을 좋아하는 체대 지망생이었다.
못하는 운동이 없었던 박 군은 특히 축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생전 박 군에게 축구화를 사주지 못했던 어머니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에서야 박 군에게 축구화를 선물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박 군의 축구화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너를 기다리는 모든 이의 따듯한 품 안에 돌아오렴. 사랑한다'
2. 남현철 군
박영인 군과 같은 반 친구였던 단원고 2학년 6반 남현철 군.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던 낭만 소년이었던 남 군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남 군은 마지막으로 세상에 자신의 곡을 남겼다. 그가 작사하고 또 다른 희생자인 고(故) 이다운 군이 작곡한 '사랑하는 그대여'라는 곡은 가수 신용재가 불러 수많은 이의 귀를 적셨다.
많이 힘든 그대, 힘이 든 그대 안아주고 싶어요. 지금쯤 그대는 좋은 꿈 꾸고 있겠죠 - '사랑하는 그대여' 가사 중
3. 양승진 교사
단원고 일반사회 과목을 담당하던 양승진 교사는 30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참사 당시 양승진 교사는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벗어 준 채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면서 배 안으로 다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결국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제자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 안간힘을 썼던 양승진 교사는 2017년 12월 19일 순직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유해를 찾지 못했기에 집에서 나온 고인의 머리카락 등을 유해 대신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4. 권재근, 권혁규 부자
그날은 권재근 씨 가족이 부푼 꿈을 안고 제주로 이사를 가던 날이었다.
권재근 씨는 베트남 출신 아내 한윤지 씨와 아들 혁규 군, 딸 지연 양과 함께 세월호에 올랐다.
하지만 단란했던 가족은 그날 이후, 희생자(엄마), 생존자(딸), 미수습자(아빠와 아들)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참사 당시 6살 혁규 군은 한 살 어린 여동생 지연 양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아빠를 찾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돌아오지 못했다.
지연 양은 오빠의 도움으로 세월호에서 무사히 탈출해 현재는 고모의 손에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