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3·1절이지만 올해는 조금 더 특별하다.
20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100주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
혹독한 일제 치하에서 굳은 신념을 갖고 독립운동에 앞장선 이들을 한 번씩 떠올려봐야 할 때다.
이런 가운데 독립운동가 혹은 그 후손이 직접 일궈낸, 민족정신에 뿌리를 둔 '기업'도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특별한 2019년 3월 1일. 이를 기념해 독립운동에 앞장선 '애국 기업'을 조명해보자.
1. 유한양행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
유한양행의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는 일제 식민 치하에서 병들어가는 민족을 보며 이러한 마음을 가졌다.
유 박사는 9세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떠나 15세에 현지 한인소년병학교에 지원하는 등 일찌감치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1926년 귀국해서는 민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유한양행을 설립했고, 이를 통해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대기도 했다.
1942년에는 재미 한인으로 구성된 '한인국방경비대' 창설에 앞장섰으며, 1945년 미군 전략정보처 'OSS(CIA의 전신)'의 '냅코작전'(재미한인을 훈련시켜 국내에 침투시킨 작전)에 참가했다.
2. LG그룹
LG그룹을 만든 고(故) 구인회 창업주는 1942년 백산 안희제 선생의 부탁을 받고 아무런 조건 없이 1만원(현재 가치 약 1억 4천만원)을 지원했다.
당시 수배 중이던 안희제 선생에게 자금을 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구 창업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당할 때 당하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야겠다"며 감시의 위험을 무릅썼다.
창업주의 이러한 신념이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것일까.
LG는 현재도 독립운동가 집안 무료 개보수, 윤봉길 의사 기념관 개보수, 서재필 기념관 개보수, 문화유산 보존 사업 등을 지원하며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위한 복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3. 동화약품
만인의 소화제 '까스활명수'를 개발한 민강 동화약품 초대 사장도 있다.
민 사장은 '사람을 살리는 물'이란 뜻을 지닌 국내 최초의 양약 '활명수'를 팔아 임시정부 자금에 보태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또 동화약품 본사는 1920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연락책이기도 했다. 민 사장은 이 과정에서 일제의 눈에 띄어 두 번의 옥고를 치렀다.
동화약품은 또한 민 사장을 포함해 독립운동가 3명을 배출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5대 사장 윤창식 선생, 윤광열 명예회장까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4. GS그룹
GS그룹의 창업주 고(故) 허만정 선생은 100여 년 전 '백산상회'를 만들어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다.
백산상회는 일본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일반 기업으로 위장해 꾸려졌으나 전국의 재력가로부터 돈을 기부받아 상해 임시정부로 전달하는 곳이었다.
허 선생은 또한 독립을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표로 진주여고를 설립, 교육에 앞장섰다.
창업주의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GS그룹은 독립운동가 알리기에 앞장서는 기업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편의점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이끌 나라'를 주제로 독립운동 역사 알리기 사업을 펼치는 국가보훈처를 돕는다.
독립운동에 힘썼던 허 선생의 뜻을 받들어 현재까지 역사 알리기 사업에 앞장서는 모습이 많은 기업의 귀감이 되고 있다.
5. 교보생명
교보생명 창업자인 고(故) 신용호 회장은 그를 포함해 아버지, 형들까지 가족 전체가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다.
특히 신 회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으며, 사업을 통해 민족 시인 이육사의 독립운동을 살뜰히 도왔다.
그는 '민주문화사'를 세워 사회에 기여하는 한편 교육을 통해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교육 보험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교육을 통해 인력을 키우겠다는 신념은 오늘날의 교보문고 설립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신 회장이 타계한 이후에도 교보생명은 각종 사회공헌활동에 꾸준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6. 진로(現 하이트진로)
지금은 하이트와 합병된 진로 역시 민족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로의 창업주 고(故) 장학엽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 황해도 곡산 공립 보통학교에서 조선어 담당으로 교편을 잡았다.
민족 정신을 말살하려는 시도가 거셌던 때, 그는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이후 그는 학생의 민족 정신을 높이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술을 빚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 선생은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진천양조상회를 설립, 진로(眞露) 소주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