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그때 말이지? 처음 손잡은 날.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진짜야"
어렵게 꺼낸 말에 여자친구는 활짝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웃음, 지금 이 순간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나는 남중 남고를 나왔다. 대학은 공학이었지만 여자를 대하는 데 숙맥이었기에 동기들에게나, 후배들에게나 매력 없는 선배였다.
그 탓에 25살이 될 때까지 내 옆에 '여자친구'라는 존재가 머문 적은 없었다.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스스로 별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사랑해줄 여자는 없었다.
쭉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언제나 세상은 회색빛이었고, 쓸데없는 걱정이 늘어갔다.
하지만 너를 만난 후 모든 게 바뀌었다. 친구의 소개로 어렵게 나선 소개팅 자리.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와 달리 너는 시종일관 밝게 대화를 이끌었다.
솔직히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용기 없던 내 머릿속에 너를 절대 놓치기 싫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연락을 이어가며 어느 정도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애프터를 신청했고, 너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번째 만남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아, 따뜻한 프라푸치노를 주문하는 내 모습에 네가 웃음을 터트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이어지며 다섯 번을 넘어갈 때쯤 나는 고백을 준비했다.
며칠간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했고, 어느 날 한 카페에서 나는 너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너랑 있으면 좋아. 너 좋아해"
지금 생각해도 정말 멋없는 고백이었다. 그래도 너는 환하게 웃었다. 말없이 내 손을 잡은 뒤 "나도 좋아해"라고 말해줬다.
그 순간, 세상이 밝아졌다. 머릿속을 지배하던 부정적인 생각은 모두 사라졌고,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온통 회색빛이었던 풍경은 누가 색칠이라도 한 듯 알록달록한 빛을 띠었다. 심지어 거울 속 내가 점점 잘생겨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 후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내 세상은 여전히 분홍빛이다. 너와 함께라면 언제까지나 그럴 것 같다.
'모태솔로'였던 나에게 다가와 줘서, 좋아해 줘서 너에게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