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문구에 디자인 접목한 모닝글로리
[인사이트] 윤혜연 기자 = 문구의 기능에 디자인적 요소를 더한 아이디어 상품을 의미하는 '팬시문구'.
강력한 디자인 파워로 국내에서 최초로 팬시문구를 전개한 브랜드는 다름 아닌 한중석 회장이 이끄는 종합 디자인 문구 기업 '모닝글로리'다.
38년 전인 지난 1981년 6월 신한교역상사로 출발한 모닝글로리는 현재까지도 국내 종합 문구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중국 저가 제품 공세, 저출산, 스마트기기 보급 등으로 인해 문구 수요가 감소하는 시대 흐름에도 끄떡없이 해마다 매출 신장을 기록, 2018회계연도(2017년 7월~2018년 8월) 530억여원 매출을 기록했다.
모닝글로리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5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한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초, 국내 문구 시장은 열악했다. 국산 노트는 흰 바탕에 줄만 그어져 단순했으며, 속지는 실로 얽혀있어 한 장 뜯으면 같이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다.
또 필기구 수입 불가 정책에도 불구하고 당시 밀반입된 일제펜 등과 같은 일제문구가 인기를 끌었다.
모닝글로리는 일제펜에 맞서 국내 최대 서점인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 안에 300여평의 '신한교역문구센터'를 열었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문구 전문 디자이너를 채용해 국산 문구에 디자인 개념을 입히기 시작했다.
당시 필기구에 미적 요소를 넣는다는 것은 파격적인 발상이었기에 모닝글로리의 혁신적인 시도는 큰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접착식 제본', '미색 내지' 등 신규 개발 연속
그렇게 출시된 한국 최초 디자인 노트는 당시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모닝글로리는 노트 한 장을 뜯으면 연결된 뒷장까지 자연스럽게 뜯어지는 '실 제본' 방식의 당시 노트를 풀로 붙여서 한 장씩 뜯어지는 '접착식 제본'형으로 바꿨다.
또 흰색 내지가 눈에 피로하다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미색 내지를 개발했다.
1986년 2월 이같은 신상품들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매장은 모닝글로리 노트를 사기 위해 100m 넘게 줄을 서는 손님들로 가득 찼다.
심지어 당시 노트 한 권을 사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고객도 있었다.
악화된 문구 업계 환경에도 품목 다양화로 순항하는 모닝글로리
승승장구하던 모닝글로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영어 이름 때문에 외국 브랜드로 오인당해 제품 불매운동까지 일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에 협력 업체들을 설득해 고객에게 함께 국산 브랜드라는 점을 홍보했다. 언론에서도 모닝글로리가 토종 브랜드라는 점을 연일 보도했다.
결국 전국적으로 모닝글로리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고 전 국민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모닝글로리는 품질 강화에 부단히 힘쓰며 정통 문구 시장에 집중했다.
스마트폰 보급과 저출산 등의 상황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도록 문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생활용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실제 모닝글로리는 슬리퍼, 가방, 실내화, 우산 등 생활용품, 소형 완구, 화장품 등으로 품목 다각화를 꾀하며 차별화에 나섰다.
2012년 '스마트 핏' 브랜드로 출시한 휴대폰 케이스, 파우치 등 스마트 기기 관련 용품들은 모닝글로리를 대표하는 상품군으로 자리 잡았다.
또 2015년에 자체 캐릭터 '뭉스', 지난해에는 '봉주르비숑'을 개발하고 해외 라이선싱 마켓에 참가하며 캐릭터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모닝글로리는 국내 문구 호황기 때 경쟁사였던 영아트, 바른손 등처럼 추억의 이름이 되지 않고 지금까지도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끝없이 노력해 독자 기술 개발, 품목 다양화 등으로 이름답게 '영광'을 이어가는 '국민 문방구' 모닝글로리에서 앞으로 어떤 신화가 더 탄생할지 기대가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