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서윤 기자 = "선생님, 우리 애가 오늘 집에 와서 친구 OO가 때렸다고 하네요. 이건 무슨 일이죠? 애가 학교에서 맞고 들어왔다는데 학교에선 책임이 없나요? 선생님은 애가 맞고 있는 동안 도대체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선생님, 우리 아이가 감기에 심하게 걸려 병원에 다녀왔어요. 약은 꼭 오후 2시에 챙겨서 먹여주시고 따뜻한 물 좀 자주 먹여주세요. 점심 식사 시간에 밥을 안 먹겠다고 하면 억지로는 먹이지 말아 주세요."
굳이 무너진 교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요즘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성화에 난처하다.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 교사 A씨는 밤늦은 시간은 물론 휴일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부모들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문자로 인해 고통스럽다.
휴일엔 좀 쉬고 싶지만 휴대전화를 꺼놓지도 못한다. "내 전화에 왜 답장이 없느냐"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두려워서다.
일부 학부모는 교사의 개인 SNS(페이스북·인스타그램·카카오스토리)까지 들어가 훔쳐보기도 한다고.
이런 학부모들의 사생활 침해에 대해 딱 잘라 "내 사생활이니 침해하지 마시라"고 당당하게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교사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던 방법은 두 개의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주기적으로 휴대폰 번호를 바꾸는 방법뿐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일방적인 전화와 문자에 시달리는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나설 전망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2일 모든 교사들에게 업무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는 공용폰을 지급해 교사의 사생활을 보호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청은 교사들의 개인 휴대폰 번호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공개되며 교사의 사생활 침해는 물론 교권 보호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교직의 특성상 학부모와 잦은 소통이 필요하긴 하지만 시간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연락하거나 교사가 연락을 받지 않는 경우 항의하는 이들도 상당수로 파악됐다.
공용폰 지급은 모든 교사에게 별도의 휴대폰을 지급하는 방안 또는 업무용으로만 쓸 수 있는 공용 번호를 제공하는 두 가지 방안으로 압축됐다.
이 중 공용폰을 지급하는 것은 예산 문제에 부닥쳐 공용번호를 제공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와 소통을 위해 마련될 공용 번호는 학교 업무가 종료되는 시간부터 착발신 및 문자와 SNS를 완전히 차단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과 연락할 길이 사라지는 셈이다.
교사들의 공용폰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논의를 거쳐 내년에 마련될 예정이다.
한편 최근 한상희 건국대학교 교수는 서울시교육청에 올린 한 보고서에 교사의 개인 휴대폰 번호가 노출되지 않으면서 교사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업무용 연락 수단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