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지친 재수 생활을 버티게 해준 너에게 보내는 뒤늦은 편지

인사이트KBS 2TV '고백부부'


[인사이트] 이경은 기자 = "애매한 짝사랑이 그렇듯 실없는 얘기들을 나눌 때면 너에게 조금이라도 특별해진 것 같아 하루종일 행복했다"


크리스마스를 5일 남겨둔 지금, 오래 간직해온 선물과도 같은 소중한 추억을 꺼내든 한 남성의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전해졌다.


지난 19일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재수 생활을 버티게 해준 자신의 짝사랑에게 뒤늦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재수를 시작하고 4월이 됐을 때 그의 눈에 모르는 얼굴 하나가 새롭게 들어왔다.


사시사철 틀어놨던 에어컨 때문일까, 그녀는 늘 제 사이즈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후드티를 입고 수업을 들으러 왔다.


수업이 끝나면 늘 종종걸음으로 선생님에게 가 질문하는 모습이 귀엽다고 몇 번 생각한 뒤 본격적으로 그녀가 밟히기 시작한 건 사탐시간이 자습시간으로 대체됐던 날부터였다.


눈인사만 주고받던 그녀가 소곤소곤 질문을 건넸다. 기출문제를 달달 외우고 있었기에 별 어려움 없이 풀어줬고, 그녀는 '오오'하는 감탄과 함께 고맙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분위기가 조금은 말랑해져서 서로가 질문을 하고 답을 해주는 시간이 많아졌다.


인사이트KBS 2TV '고백부부'


어느 날 그녀가 톡 치며 문제집을 내밀었고 문제를 풀어준 뒤 개념설명을 덧붙이자 그녀는 순간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소리 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에 '짝사랑'이 깃든 순간이었다.


착각이라고, 또 재수생이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이라고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이미 시작된 짝사랑은 깊어만 갔다.


그는 수업 시작 전 마음이 두근대고, 초콜릿이라도 하나 건넬까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눈인사로는 모자라 말을 걸고 싶었고, 말을 걸기 시작하자 손을 잡아보고 싶어졌다.


그녀를 좋아한다고 인정하자 오히려 마음의 죄책감이 덜어졌고, 그 뒤로 젤리나 사탕을 건네고 주말엔 데이트라도 하듯 카페를 가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와 주고받은 메시지는 지친 그의 하루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인사이트KBS 2TV '고백부부'


시간이 흘러 수능이 끝난 후 그는 수능을 꽤 잘 본 셈이었지만 그녀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녀의 메신저 프로필이 바뀌고 난 뒤 그는 덜컥 마음이 무거워졌다. 혹시 자신 때문에 수능을 그녀가 수능을 망치게 된 건 아닐까, 혹시 그녀의 행운을 자신이 빼앗아온 건 아닐까.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고 매일 술에 절어 살던 어느 날, 그녀와 꼭 닮은 사람이 지나갔다.


그러나 혹시나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그가 걸음을 멈추고 주춤하는 사이 그녀는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은 그에게 지독한 후회를 남겼다. 그로부터 2년 뒤 우연은 다시 그녀를 그에게로 데려왔다.


재수 시절 그 커다란 후드티를 입고 기차역 반대편에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한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향했다. 


인사이트KBS 2TV '고백부부'


그때 한 남성이 그녀의 가방을 들어줬고 그는 되돌아섰다. 그러곤 멀리서 오랜 시간 그리워했던 그녀를 눈으로 쫓았고,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눈이 동그래진 그녀, 그게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그에겐 이젠 묻고 싶은 말들만이 남았다. 결국 바라던 대학은 갔는지,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날 생각했는지, 재수하던 그 때 날 좋아했는지.


그는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물을 수 없게 돼버렸으니 널 만난 건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받은 셈 쳐야할 것 같다고.


정말 혹시라도 내 운명이 또 다시 너에게로 데려다준다면 그 때는 꼭 내가 먼저 말을 건넬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딱 이 말만 건넬 수 있을 것 같다고.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