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 흥행…"21년 전, 대한민국은 무너졌다"
[인사이트] 윤혜연 기자 = 1997년 11월 21일,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구(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국가 존폐 위기였다.
매일 뉴스는 국민이 자부하던 굴지 기업들의 부도 소식을 하나둘 전하며 문을 열었다.
실직한 수많은 가장은 차마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출근하는 척 길에 나앉아 담배만 뻐끔뻐끔 펴야 했으며, 개중에서도 많은 이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
IMF로 11% 하던 금리는 25%로 치솟았으며, 부채비율 높은 기업은 가혹한 구조조정이 시행됐다.
참 힘든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8일 배우 김혜수와 유아인 주연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되며 당시 국가 상황이 다시 한 번 조명되고 있다.
그 시절을 겪어온 국민이라면 기억할 수밖에 없는, IMF 당시 처참히 무너진 국내 기업 6곳을 모아봤다.
1. 한보그룹
당시 재계 14위였던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 한보철강이 1997년 1월 23일 부도난 것은 대한민국 IMF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사실상 IMF 외환위기의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한보그룹은 1990년부터 대규모 제철소인 '당진제철공장' 설립을 시작했다. 해당 제철소 부지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대형 선박이 드나들기 힘든 등 적합한 지역이 아니었음에도 매립 허가는 단 9개월 만에 났다.
이러한 가운데 건설부와 서울시가 한보에 수서 등 택지개발 예정 지구를 특혜분양한 '수서사건'이 드러나며 주 자금원이었던 수서지구 아파트 건립이 무산됐다.
이로써 사실상 한보그룹은 자금조달 능력이 없어진 셈. 그러나 제일은행 등 4개 은행은 사업계획에 대한 정밀한 조사 없이 3조 5천억원이나 되는 자금을 선뜻 지원했다.
결국, 대출 상환을 못 한 한보그룹은 부도났으나 해당 은행 대출 조사 등의 과정에서 정경유착, 부정부패, 관치금융, 부동산 투기, 황제경영, 문어발식 확장 등이 드러나게 됐다.
이후 한보그룹의 멸망을 시작으로 방만한 경영과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던 다수의 재벌 그룹이 연쇄 부도나기 시작했으며, 결국 1997년 외환 위기를 가져왔다.
2. 삼립식품
우리나라 제빵 역사인 삼립식품이 자금난으로 1997년 5월 어음 등 60여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계열사인 삼립테코, 삼립유지 등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후 이듬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삼립식품은 1945년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조그마한 제과점으로 시작해 국내 제과의 역사를 이끌었다.
70년대 빵의 수요가 늘며 본격적인 성장을 했으며, 삼립호빵은 그 밑거름이 된 대표적인 제품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신선한 빵을 즉석에서 구워 파는 제과점이 등장하며 공장식 대량 빵 생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섰다.
삼립식품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음료, 양모피 등의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난에 몰리게 됐다.
이후 법정관리 도중 개그맨 김국진의 이름을 딴 '국진이빵'으로 매출 급증, 회생에 성공했고, 2004년 삼립식품을 모기업으로 하는 SPC그룹이 출범했다.
오늘날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등을 운영하며 국내 최대 제빵기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3. 기아그룹
당시 재계 8위였다. 28개 계열사를 갖고 있던 기아그룹은 1997년 7월 15일 결국 부도유예협약 대상 기업으로 선정됐다.
자동차 내수시장 침체, 불안정한 노사관계, 종합금융사 등 금융권의 집중적 자금 회수 등의 원인으로 부도를 낸 것이다.
부도유예 기간 후 기아는 모체인 기아자동차의 화의를 요구했으나 채권단은 법정관리를 선택했다. 국제공개입찰 결과 1998년 말 현대가 삼성, 대우, 미국 포드 등을 제치고 기아자동차의 인수 업체로 선정됐다.
이후 기아자동차는 2000년 2월 17일 법정 관리를 끝내고 그해 8월 31일 계열 분리돼 현대자동차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이 됐다.
이 외 아주금속공업(현 메티아), 카스코(현 현대모비스), 본텍(현대오토넷으로 합병), 위아(현 현대위아), 위스코(현대모비스로 합병), 기아특수강(현 세아베스틸) 등 6개 계열사가 살아남았다.
4. 대우그룹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는 당시 재계 5위였던 대우그룹이 무너지자 모두가 경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대우그룹은 정작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기존 해외사업을 지속하고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확장전략을 지속했다.
문제는 1999년이다. 그해 3월 그룹의 부채비율이 400%로 늘어났으며, 자기자본비율은 50% 이하로 떨어졌다. IMF 사태로 인한 고금리 때문이었다.
대우그룹은 연 20%를 넘는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했다. 빚을 얻어 빚을 갚는 등 악순환을 겪었고, 이때 횡령 등의 사태도 함께 터지며 결국 부도를 냈다.
그해 대우 총부채는 89조원, 국내 역대급 파산 규모를 기록했다. 이후 GM이 대우차를 인수해 2002년 GM대우를 출범했고, 이는 2011년 한국GM으로 사명을 바꿨다.
한국GM은 한국 시장 철수, 법인 분리 등으로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5. 진로그룹
'두꺼비술'로 불리며 서민들을 위로해온 진로 소주. 오늘날 소주병과는 달리 큼지막한 용량의 두꺼비술병은 아직도 회자되곤 한다.
카스 맥주까지 히트를 치며 승승장구하던 진로그룹은 무리한 사업 다각화에 뒤통수를 맞게 된다.
1988년 당시 15개였던 진로 그룹의 계열사는 10년도 채 안 된 1997년에 제조, 백화점, 화장품, 광고업 등 24개로 불어났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진로그룹은 1997년 9월 9일 6개 회사 가운데 진로, 진로건설, 종합식품 등 3개 업체에 최종 부도처리 했다.
사실상 해체 순서였으나 이듬해 3월 핵심 계열사인 6개사가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와 화의개시신청 인가를 명령받았다.
이에 1999년 12월 맥주사업 부문 진로쿠어스맥주가 OB맥주에 매각, 2000년 2월 위스키사업 부문 진로발렌타인스가 프랑스 위스키 업체 페르노리카사에 매각됐다.
이후 진로의 핵심인 소주 사업은 2005년 하이트맥주에 인수됐다.
6. 해태그룹
당시 재계 순위 24위였던 해태그룹은 1997년 11월 1일에 최종 부도 처리됐다.
주력사인 해태제과와 해태전자, 골판지를 만드는 대한포장공업 등 3개 회사는 조흥은행에 어음 등 196억원을 결재하지 못했다.
이로써 해태그룹은 금융권에 총 3조3천억원의 빚을 지게 됐다. 이러한 가운데 종합금융회사들이 한꺼번에 대출금 회수에 나서자 해태그룹은 이를 견디지 못했다.
해태그룹이 해태중공업 등 적자가 지속된 계열사를 정리하지 않았던 것도 기업의 위기에 한몫했다고 분석됐다.
특히 '해태 타이거즈' 구단은 호남 지방을 연고로 창단돼 80~90년대 한국프로야구 세계를 주름잡고 인기몰이를 한 바 있다.
호남 출신 방송인 김병조는 해태그룹이 무너질 때 "일부러라도 브라보콘만 먹고 초코파이 대신 오예스를 꼭 사 먹곤 했는데"라고 인터뷰하며 애정과 안타까움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