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우유 배달하다 '풀무원' 만들어 연 매출 2조 기업 일군 원경선 창업주

인사이트故 원경선 풀무원 창업주 / '원경선 기념관' 홈페이지 


한평생 '공동체 정신' 따른 故 원경선 풀무원 창업주 


[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내가 먹을 만큼만 남기고 다른 사람과 나누면 이 세상에 아무도 굶주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풀무원의 창업주인 故 원경선 원장이 한 말이다.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원 원장은 한평생을 '공동체 정신'에 따라 살았던 인물이다. 


인사이트'원경선 기념관' 홈페이지 


1914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원 원장은 열여섯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후 가난은 지독히도 그를 따라다녔다. 우유배달부터 인쇄소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해방 후 원 원장은 토목 청부업에 뛰어들었다. 군정 관계자에게 뇌물을 주고, 공사를 따고, 돈을 버는 날의 연속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신앙심이 망가지는 것을 느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1955년 '풀무원' 농장 지어 사람들 받아들인 원 원장 


그러던 어느 날 원 원장의 삶을 뒤바꿀 만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트럭 사고를 당한 것.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 그는 다시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1955년 원 원장은 다시 '농부'로 돌아왔다. 경기도 부천 땅 1만평을 개간해 '풀무원'으로 이름 짓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쇠가 풀무질을 거쳐 쓸만한 철기구로 거듭나듯이, 농장 사람들을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뜻에서 '풀무원'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소유자를 한정하지는 않았다. '노동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받아들인다'는 것이 농장의 운영 원칙이었다. 


전쟁 고아를 비롯해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든, 누구든 받아들이는 '풀무원 공동체'를 실현한 것이다. 


인사이트'원경선 기념관' 홈페이지 


전쟁 고아와 기아 문제에 깊은 관심 보였던 원 원장 


1976년엔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겨 '정농회'를 설립했다. 화학 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국내 최초의 '유기농' 농민 단체였다. 


원 원장은 화학비료와 제초제로 인한 간접살인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원 원장의 이타적 삶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국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었던 그는 전쟁 고아와 기아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아프리카로 떠나 기아 구호 활동을 펼치고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 초석을 마련하는 등 국내외에서 빈곤 타파 운동에 앞장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그는 1995년 '글로벌 500 유엔개발계획 환경상',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8년 '인촌상' 등을 받았다. 


2009년 기아대책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는 "기아대책은 나와 내 가족을 넘어 이웃과 인류의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라며 "더 많은 후원자들과 기업들의 참여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생명이 없는 평화로운 지구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인사이트원 원장과 그의 아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압구정에 '풀무원' 채소 가게 연 아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현재의 '풀무원' 전신을 만든 건 원 원장의 아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1981년 원 의원은 서울 압구정동에 작디작은 채소 가게를 열어 풀무원 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들을 팔기 시작했다. 


가게 이름은 '풀무원 농장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 


당시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유기농이 강남 주부들 사이에서 "몸에 좋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풀무원은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현재는 '바른 먹거리'를 모토로 2조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중견 기업이 됐다. 


인사이트'원경선 기념관' 홈페이지 


그가 남긴 '생명존중·이웃사랑' 가치는 오래도록 우리 삶에 남아 


유기농을 통해 진정한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원 원장은 2013년 100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원 원장의 아들 원 의원은 1996년 자신의 회사 지분을 모두 기부해 장학재단을 설립했으며, 충북 괴산에 '원경선 기념관'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그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더 나은 먹거리, 더 나은 삶, 더 나은 환경을 추구했던 원 원장이 남긴 '선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우리 삶에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