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15일(수)

"'코인노래방'에서 실연당해 펑펑 울다가 '새 남친'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MBC '역도요정 김복주'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사랑하는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하루 앞둔 여대생이 쓴 글이 훈훈함, 설렘, 그리고 부러움을 한꺼번에 전하고 있다.


지난 27일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익명의 제보자가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쓴 편지가 게재됐다.


익명의 고대생 A씨는 "너를 처음 만난 날은 지나간 사람을 생각하다 서러운 마음에 혼자 코인노래방을 찾은 날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전 애인과 함께 듣던 노래를 부르다 결국 눈물을 쏟은 A씨. 노래가 끝나도 A씨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고 노래방안은 A씨의 울음만이 가득 찼다. 전원이 켜진 마이크로 인해 울음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다.


그때였다. 방문에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조심스레 문을 연 A씨의 앞에는 같은 학교 점퍼를 입은 남학생이 서 있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남학생이 A씨에게 건넨 첫 마디는 "괜찮으세요?"였다. 흘린 눈물을 닦아내며 괜찮다 대답하고 자리를 피하려는 A씨에게 남학생은 초콜릿 하나를 쥐여주었다. A씨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초콜릿을 먹었다. 유난히 달았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쯤 지난 뒤였다. 강의가 끝나고 학교 캠퍼스를 가로질러 걸어가던 A씨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돌아보니 코인노래방에서의 그 남학생이었다.


남학생은 A씨에게 자기를 기억하냐고 물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A씨에게 차 한잔하자 제안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카페로 향했다.


A씨는 처음에는 정말 커피만 마시고 나올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알게 됐다. 남학생과 자신이 굉장히 잘 맞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로맨틱 코미디보다는 스릴러를 좋아한다는 것도, 팝송과 인디밴드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도, 사탕보다는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것도, 눈보다는 비를 더 좋아한다는 것도.


그렇게 그 남학생은 A씨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어 갔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도깨비'


A씨는 "너는 나에게 누군가를 잊기 위한 만남이 아닌, 그저 나와 너를 위한 만남이 되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넌 나에게 따뜻한 봄이고, 청량한 여름이고, 시원한 가을이며 새하얀 겨울이야"


상대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설레고 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라는 A씨. 다음 날은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A씨는 "항상 일찍 나와 날 기다리던 너를 위해 내일은 내가 먼저 나가 널 기다리고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쓰다 보니 늦어진 A씨의 답장에 남학생, 아니 지금 A씨의 남자친구는 걱정어린 메시지를 재차 보내왔다. 


A씨는 "이제 답장하러 가야겠다"라며 "내 사람, 내가 많이 사랑해"라는 고백으로 편지를 끝맺었다.


공개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페이스북상에서 좋아요와 댓글 수천여 개를 받은 이 편지는 많은 누리꾼에게 부러움과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다.


아래 A씨의 글 전문이다.


내가 널 처음 만난 날은, 혼자 방에 누워 지나간 사람과 함꼐 듣던 노래를 들으며 우울해하던 날이었어.

문득 서러운 마음에 혼자 코노를 찾았고, 그 사람과 함께 듣던 노래를 부르다 미처 억누르지 못한 눈물이 목소리에 묻어나더라. 노래가 잦아들 즈음에 방 안에는 나의 훌쩍거림만이 남았고, 그런 나를 위로하는건 반짝거리는 조명과 화면 뿐일 때,

그 때 코노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중한 노크소리가 들렸어. 이르지 않았던 시간과, 모자만 푹 눌러쓰고 나왔던 초췌한 상태 때문에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칠까 노심초사했던 나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리였지. 다시 한 번 조심스레 들리는 소리에 채 한 뼘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문을 열었고, 밖에는 후드티에 과잠을 입은 네가 서 있었어.

분명 흔하진 않았을 상황에 뻘쭘하고 조금은 당황한 표정을 한 네가 나에게 건넨 첫 마디는 '괜찮으세요?'였을거야.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난 후라 기분도 꿀꿀했고, 네가 빈 방을 찾다가 왔을거라는 생각에 들리지도 않았을 목소리로 괜찮다고 대답하고 방에서 나와 걸어갔어.(생각해보니 그 날따라 내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던 코노에서 빈 방을 찾았을리가 없었겠구나, 싶네.) 그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네가 나에게 초콜렛 하나를 쥐어주고 나보다 먼저 뛰어나가버리더라. 몇 초간 멍하니 서 있다가 밖에 나와 초콜렛을 보니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어. 대충 코노 방에 들어가는 날 봤고, 화장실에 다녀오다 우는 소리가 들려 이거라도 주고 싶었다, 그런 내용이었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카페라도 한 번 같이 가고 싶다는 말과 함께 작게 번호가 하나 써 있더라. 포스트잇은 잘 접어 주머니에 넣고, 걸어가는 길에 초콜렛을 먹었어. 평소에도 좋아하는 초콜렛이었지만 유난히 달더라.

그렇게 조금은 당황스러운 밤이 지나고, 종종 울적했지만 다시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갔어. 사실 그 번호로 연락할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어. 아니, 못했다고 해야 하나? 내 감정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할 때였는데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는게 조금은 무서웠거든. 연락해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누군가를 잊기 위해 가지는 만남은 상처로 이어질 거 같아서 평소 들고 다니는 공책에 붙여놓기만 하고 고마웠던 사람, 으로 남기려고 했어.

그 일이 있고 일주일 좀 넘게 지났을까? 수업도 다 끝나고, 간만에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서 이것저것 볼 일을 보고 중광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두드려서 이어폰을 빼고 돌아보니 그 때와는 달리 셔츠에 니트를 입은 네가 날 바라보고 있더라. 그 때 나는 무슨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당황스러움이었을까, 반가움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을까?

너는 굉장히 초조한 표정을 하고 나에게 혹시 자기를 기억하냐고 물었어. 나는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고. 당황스러울걸 알지만 하나만 물어보겠다던 너는 혹시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더라. 아니라는 나의 대답에 그럼 혹시 자신이 싫거나 마음에 안 들어서 연락을 안 한 거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나는 그냥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했어. 지금 생각하니까 웃기다, 그치?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고, 그저 쪽지를 받았을 뿐인데 시간이 필요하다니. 하지만 너는 그렇게 성의없는 대답에도 표정이 확 밝아지더라. 그럼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면 커피 한 잔만 마시자는 너의 표정이 너무 간절해서였는지, 그 때 먹었던 초콜렛이 떠올라서였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너와 함께 카페로 향했어.

처음에는 정말 커피만 마시고 나올 생각이었지만, 달달한 걸 좋아한다는 너와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굉장히 잘 맞는 사람이었어. 정통 멜로보다는 로코를, 로코보다는 스릴러 영화를 더 좋아한다는 것도, 노래를 가리지 않지만 특히 팝송과 인디 밴드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도. 사탕보다는 초콜렛을 좋아한다는 것도, 눈보다는 비를 더 좋아한다는 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내가 약속에 가야 할 시간이더라. 번호를 물어봐도 되냐는 너에게 나는 포스트잇에 적힌 번호를 보고 연락하겠다고 했어. 네가 나에게 준 포스트잇을 통해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 날 저녁, 집에 들어가 너에게 안녕? 이라는 짧은 카톡을 남겼어. 5분만에 답장이 오고, 그 날 내가 잠들기 전까지 너와 카톡을 한 것 같아. 그 후에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은 너와의 카톡이었어. 카톡을 하다 보니 통화도 하게 되었고, 통화를 하다 보니 만나게 되더라. 너와 만났을 때 내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듯 집중해주는 너의 눈빛이 따뜻했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때 흔들리는 너의 곱슬머리가 귀여웠고, 내 이야기에 집중했을 때 입술을 꾹 다무는 진지한 표정이 좋았어. 한 번 좋아지기 시작한 마음은 억누를 수 없었어. 사실 날 대하는 너를 보고 있자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그렇게 바라봐주는 너를, 그렇게 말해주는 너를, 그렇게 따뜻한 사람인 너를.

그리고 너는 나에게 누군가를 잊기 위한 만남이 아닌, 그저 나와 너를 위한 만남이 되었어. 너에게 오는 답장이 기다려졌고, 너와 만날 시간들이 기다려지는 그런 사람 말이야.

넌 모르겠지만, 사실 난 오글거려서 좋아한다는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었어. 그랬던 내가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일까,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같이 학교를 걷다가 중광에 앉아있던 그 날, 미친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손가락끼리 맞닿아 있던 손을 슬그머니 잡고 좋아한다는 한 마디를 툭 던졌지. 그런 내 말을 들은 너의 표정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거야. 그리고 나를 꼭 껴안아오던 너에게 은은히 풍겨오던 너의 향기도,

넌 나에게 따뜻한 봄이고, 청량한 여름이고, 시원한 가을이며 새하얀 겨울이야. 내가 표현이 적다고, 자기만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서운해할때도 있지만, 이렇게 너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설레어하는 나를 알고 있을까? 페북을 안 하는 네가 이 글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난 내일 만나기로 한 네가 미친듯이 보고 싶다. 내일 너는 무슨 옷을 입고, 무슨 표정을 하고 날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다, 항상 일찍 나와 날 기다리던 너를 위해 내일은 내가 먼저 나가 널 기다리고 있어야겠다. 날씨가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오라는 너의 카톡에도 난 너에게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미 옷을 골라놨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향의 향수를 뿌리고 네가 나한테 잘 어울린다며 사 준 귀걸이를 하고, 내일은 내가 먼저 널 기다릴게. 지금까지 항상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너를 위해서, 이제는 내가 먼저 손을 잡고, 먼저 안아줄게.

너와 보내는 시간을, 너와 주고받는 카톡을, 밤새워 하는 통화를. 날 보는 너의 표정을, 그 설레는 말투를. 밝은 갈색이었다가 까맣게 물들여진 너의 곱슬머리를, 활짝 웃을 때 생기는 보조개를. 내가 핫팩만 쥐고 있는게 서운하다면서도 내 손에 슬쩍 핫팩을 건네주고, 따뜻해진 나의 손이 좋다는 핑계로 손깍지를 껴오는 너의 귀여운 투정을 좋아해. 앞으로 더 빛나는 시간들을, 그리고 더 많은 계절들을 함께하자.

이 글을 쓰다 보니 늦어진 나의 답장에 아직 안 들어갔냐며 걱정어린 너의 카톡이 왔네. 이제 답장하러 가야겠다.

내사람, 내가 많이 사랑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들 추운 겨울 따뜻하게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