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 11년 만에 종지부이재용 부회장 대신 고개 숙여 사과한 김기남 사장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꼬박 11년이나 걸렸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은 '반도체 백혈병' 사태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반도체 백혈병' 사태와 관련 기자회견 방식으로 사과한 것은 지난 2014년 5월 당시 DS부문장이었던 권오현 회장 이후 4년 6개월 만의 처음이다.
김기남 사장은 '반도체 백혈병' 사태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피해자 측과 합의한 보상지원, 재발방지 및 사회공헌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은 현장 그 어디에도 모습을 비치지 않아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1년 만에 삼성-반올림 중재판정서 합의이행 협약식 개최김기남 사장·황상기 반올림 대표, 합의이행 협약서에 서명
2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는 삼성전자와 반도체 피해자 시민단체 반올림의 '중재판정서 합의이행 협약식'이 열렸다.
'중재판정서 합의이행 협약식'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과 김지형 조정위원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 피해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양측이 협약서에 서명했다.
김기남 사장은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 드리지 못했다"며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위험에 대해 충분한 관리를 하지 못했다"며 "병으로 고통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기남 사장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고개 숙여 사과홈페이지에 사과문·지원보상 안내문 게재…500억 기탁
김기남 사장은 또 "지원보상위원장이 정하는 세부 사항에 따라 2028년까지 보상이 차질없이 이뤄지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속대로 반올림 피해자 앞에서 준비된 사과문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사과문을 발표한 김기남 사장은 사과문 낭독이 끝나자 고개를 숙여 피해자들에게 거듭 사과했다.
삼성전자 측은 중재안에 따라 회사 홈페이지에 사과문과 지원보상 안내문을 게재하는 한편 지원보상을 받은 반올림 피해자들에게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또 산업재해 취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중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전문성과 공정성을 갖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기탁하기로 했다.
故 황유미 씨의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진 '반도체 백혈병'묵묵부답 일관하던 삼성전자…11년 만에 반올림과 합의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는 11년 전인 지난 2007년 3월 삼성 반도체3라인에서 근무하던 고(故) 황유미 씨가 꽃다운 나이인 23살에 세상을 떠나면서 불거졌다.
2008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희귀병을 얻은 노동자들을 돕는 시민단체 반올림이 만들어졌고 故 황유미 씨의 사건은 반도체 공장의 산업 재해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됐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1000일 넘게 천막농성을 하며 직업병 문제 해결을 요구해 왔었지만 그동안 삼성전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가 11년 만인 지난 7월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 근로자의 백혈병 문제를 놓고 조정위원회의 제안을 무조건 수용하기로 함에 따라 양측의 합의가 극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3년 전 '메리스 사태' 당시 직접 사태 진화에 나섰던 이재용2018년 '반도체 백혈병' 사태…김기남 사장 통해 대신 사과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 사과와 관련 실질적인 책임자 이재용 부회장이 월급 사장인 김기남 사장을 앞세워 대신 사과하고 뒤로 꽁꽁 숨은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책임자로서 기자회견에 나와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고 머리까지 숙여 사과했던 과거 행보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의 안이한 대처로 메르스가 확산됐다는 국민적 여론이 커지자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직접 사태 진화에 나선 바 있다.
반면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 경우는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선 것이 아닌 김기남 사장을 통해 대신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회계' 사태 파장 일파만파경영권 승계 작업에 '빨간불' 켜진 이재용 부회장
2015년 '메리스 사태' 때와 비교했을 때 11년 만에 이뤄진 삼성전자의 '반도체 백혈병' 사태 사과가 과연 진정성 있는 사과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아닌 김기남 사장이 나서서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를 사과한 이유가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선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회계' 사태 때문으로 보고 있다.
증권선물위원회의 삼성바이로직스 '고의 분식회계' 결론이 나오자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로까지 파문이 확산되는 양상이어서 대외행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9일 경기도 용인 선영에서 진행된 삼성그룹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의 31주기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는 등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황상기 반올림 대표 "삼성전자 사과, 솔직히 충분하지는 않아"삼성전자, 피해자 측과 합의한 보상과 지원 이행…차질 없는 보상
한편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김기남 사장의 사과문 발표 이후 소회를 털어놨다.
황상기 대표는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과는 솔직히 직업병 피해 가족들에게 충분하지는 않다"며 "지난 11년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생각하면 그 어떤 사과도 충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국내와 해외서 노동조합을 탄압해 왔다"면서 "이제라도 사과하고 노동조합 할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황상기 대표는 또 "딸 유미와 내 가족이 겪었던 아픔은 잊을 수 없다"며 "앞으로 만들어질 지원보상위원회와 발전기금을 통해 진행될 사업들에 임하는 모든 분들께서 이 점을 꼭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