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각산' 국내 최초로 들여온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
[인사이트] 황성아 기자 =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심해 목이 컬컬할 때 사람들은 '용각산'을 찾는다.
큰 무리 없이 기관지와 목의 정화작용을 보조하고, 호흡이나 발성에도 탁월한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지난 1967년 6월 처음 국내에 발매돼 지금까지 총 7,800만갑 넘게 판매된 보령제약의 '용각산'은 사실 140여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일본 전통의 생약이다.
그런데 사실 '용각산'이 오늘날의 '국민약' 반열에 들기까지 보령제약 창업주 김승호 회장의 끈기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용각산' 최초 개발한 일본 류카큐산 설득 성공한 김승호 회장
김승호 회장은 식물성 생약에서 추출된 주성분이 별다른 기관지와 목을 정화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접하게 된다.
호흡이나 발성에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을 알게 된 그는 '용각산'을 최초로 개발한 일본 류카큐산과 기술제휴를 맺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마침내 일본 류카쿠산이 사업 초기였던 보령제약에 일본에 있는 생산시설을 국내에서도 갖출 수 있을지에 관해 물으며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에 김승호 회장은 곧바로 허허벌판의 성수동 공장부지로 류카큐산 중역진을 데려가 그곳에서 펼쳐질 보령제약의 미래를 설명하고 설득해 계약을 성사시켰다.
협상 끝에 어려움 겪는 김승호 회장 "일본 제품보다 품질 떨어진다"는 구설수에 휘말려
어려운 협상을 성사하고 '용각산'을 처음 개발한 김승호 회장은 기쁨도 잠시 또 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난 1967년 6월, '용각산' 5만갑이 출시됐지만 김승호 회장의 예상과는 달리 용각산은 팔리지 않았다. 오히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제품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구설수에 휘말린다.
무엇보다도 '용각산'의 포장상태에서 일본보다 떨어진다는 인식이 생겼다. 누구보다도 '용각산'의 효능을 확신했던 김승호 회장. 그는 첫 출하물량 5만갑을 수거한 뒤 폐기했다.
새로운 용기와 포장 제품 만든 보령제약 '용각산' 들고 소비자 찾아 거리로 나간 김승호 회장
긴 고심 끝에 그는 일본 원제품과 똑같은 수준의 새로운 용기와 포장으로 제품을 다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업사원들과 함께 새로 만든 '용각산'을 들고 소비자를 찾아 나섰다.
더불어 '용각산'의 효능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광고를 진행했다.
미세분말 제형의 특징을 살려 "이 소리가 아닙니다~"로 시작하는 명카피도 만들어 '보령제약'의 장수식품, 국민약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보령제약 '용각산' 매출 2년 사이 급격히 늘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용각산'에 투입된 광고비는 단일 품목으로서는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지난 1968년에 보령제약이 광고에 투자한 액수만 전체 매출의 32%인 약 3,056만원에 달했다.
김승호 회장은 누구보다도 '용각산'의 효능에 자신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노력의 산물일까. 지난 1966년 584만원이던 보령제약의 매출은 1967년 1,980만원, 1968년에는 9,442만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뚝심 경영' 이어온 김승호 회장지난해 매출 4,227억 기록
좋은 약을 직접 만들어 국민들에게 주고 싶었던 김승호 회장.
한 번의 실패에도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용각산'의 효능을 믿으며 뚝심 경영을 한 김승호 회장이 있었기에 오늘 날의 보령제약이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지난해 보령제약은 4,227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순이익은 565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906% 증가하며 제약사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