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텐데이' 시작과 동시에 접속자 몰려 서버 폭주SPA 브랜드 '탑텐' 신화 일군 신성통상 염태순 회장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며칠 전 SPA 브랜드 '탑텐'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기 무섭게 하루종일 홈페이지 접속자가 몰려 서버가 폭주했다.
같은날 전국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오픈시간부터 마감시간까지 1+1 상품들과 1만원 특가 상품들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거렸다.
놀랍게도 '탑텐' 브랜드 최대의 페스티벌인 '텐텐데이(1010DAY)' 행사 기간 동안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있는 신성통상 본사에서 '텐텐데이' 아이디어 하나로 초대박을 터트린 토종 SPA 브랜드 '탑텐'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을 인사이트 정인영 부장이 만났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처음 회장실에 발을 내딛는 순간 20대 젊은 친구들 못지 않은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염태순 회장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맞이해줬다.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신발과 양말까지 자신이 직접 코디했다고 밝힌 염태순 회장은 '패션계의 대부(代父)'라는 별명답게 우람한 체격으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강렬한 카리스마 탓에 성격도 엄할 줄 알았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앞서 염태순 회장은 자신과 같은 사람은 평소 인터뷰 할 기회가 많이 없어 입을 미리 풀어줘야 한다며 서스럼없이 농담을 던졌다.
회장이라는 '권위 의식'을 내세우기 보다는 상대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염태순 회장의 모습이 신선함을 넘어 감동이었다. 동네 이웃 삼촌처럼 편안했다고 할까.
염태순 회장은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도 시종일관 웃으며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평소 그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봤다.
29살 늦깎이 나이에 대학 졸업…가방 제조회사에 입사2년 3개월 일하다 하루 아침에 직장 잃은 염태순 회장
어떤 계기로 전공과 연관성이 전혀 1도 관련없는 패션업에 종사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참고로 염태순 회장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패션업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전공이다.
염태순 회장은 "사실 대학을 스물 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졸업을 했다. 당시 스물 아홉이면 회사에 원서도 내지 못했다"며 "졸업하고 갈데가 없어 조그마한 가방 제조회사에 들어갔다. 그게 시작이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러면서 "당시만 하더라도 수출회사가 대세였다"며 "솔직히 먹고 살려고 들어갔다. 내가 좋아해서 들어간게 아니었다. 먹고 살 밥줄이었던 것"이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염태순 회장은 어렵게 들어간 가방 제조회사에서 어떻게 가방을 만들고 수출하는지를 열심히 배웠다고 했다. 일을 배운지도 2년 3개월쯤 됐을까. 그 무렵 그의 인생에서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열심히 다니던 가방 제조회사가 다른 사장한테 경영권이 넘어갔고 내부 사정으로 인해 염태순 회장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만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좌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염태순 회장은 당시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랐는지 지그시 눈을 감고서는 "'에라이 모르겠다. 그래, 차라리 나가서 창업이나 하자'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말했다.
창업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염태순 회장은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을 탈탈 털어 오늘날 신성통상의 최대주주이자 가방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 가나안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염태순 회장은 "회사에서 나온 것은 '위기'였다기보다는 그냥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방법이 없었다. 갈데가 없었고 배운 것이라고는 가방 수출하는 일 뿐이었으니까"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가나안이라는 가방 제조회사를 설립한 염태순 회장은 '88 서울올림픽'으로 인건비가 크게 오르는 등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다. 인도네시아 현지에 공장 진출한 것이다.
IMF 외환위기를 기회로 삼은 염태순 회장의 통찰력법원 매물로 나온 신성통상 인수…인생의 터닝 포인트
염태순 회장은 인도네시아에 공장 진출할 당시를 떠올리며 "겁이 없었던 거다. 빨리 해외나가서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 가나안이 재도약에 굉장히 좋은 계기가 됐다"며 "그때 나이가 어렸으니깐 남들보다 빨리 움직였다"고 머쓱함을 드러냈다.
해외 공장 진출을 통해 돈을 번 염태순 회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 빌딩을 사는 주변 사람들과 달리 사업을 확장해보자는 생각에 법원 경매로 나온 신성통상을 인수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당시 신성통상은 제일 잘 나가던 대우그룹의 계열사였다. 물론 신성통상을 인수하기까지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십번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그는 신성통상 인수를 결정했다.
염태순 회장은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신성통상 인수할 당시 고민을 무진장 많이 했다"며 "내가 모르는 업종이고 그때 인수한 금액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생을 길게 놓고 봤을 때) 도전할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결국 신성통상을 인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결정 하나로 인생이 통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가방 브랜드 '아이찜(Izzim)' 인기를 발판삼아 신성통상 인수에 성공한 염태순 회장은 오직 자신이 직접 브랜딩하고 직접 만든 브랜드만을 밀고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염태순 회장은 '탑텐' 론칭 계기를 묻는 질문에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더니 "당시 외국에서 들어온 수입 SPA 브랜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신성통상은 우리 브랜드를 우리가 만들어서 국내 이미지를 갖고 브랜딩 하는게 방침"이라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SPA 브랜드 '탑텐'이다"고 설명했다.
염태순 회장은 10가지의 아이템을 확실하게 만들어서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가성비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뜻에서 SPA 브랜드 이름을 '탑텐(TOPTEN10)'이라고 짓고 2012년 론칭했다.
'탑텐'이 론칭한 같은해 삼성물산 패션부문 이서현 사장도 8초 만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뜻의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8seconds)'를 선보였다.
최고의 가성비 제품 제공하자는 취지로 '탑텐' 론칭
'탑텐' 론칭 5년만에 처음으로 흑자…브랜드 성공
이서현 사장의 야심작 '에잇세컨즈'가 론칭 6년째 계속 부진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신성통상 SPA 토종 브랜드 '탑텐'은 론칭 5년만인 지난 2017년 처음 흑자로 전환했다.
염태순 회장은 "'탑텐'이 현재 2,3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올해 2,800억원으로 마감이 예상된다"며 "국내에서 2,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것은 성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년 '탑텐' 매출을 3,000억원을 보고 있다"며 "매출 1조 이상 올리는게 목표다. '유니클로'도 하는데 못할 게 뭐가 있냐"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재 염태순 회장은 과거 신성통상이 국내 들여와 팔았던 수입라이선스 브랜드 유니온베이를 과감하게 사업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국내 토종 브랜드만을 만들겠다는 그의 '고집'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니온베이 사업을 철수하면서 연매출 600억원 정도가 사라졌다. 그래도 염태순 회장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염태순 회장은 "내가 망하면 망하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며 "패션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옷쟁이로서 꼭 해내야 할 자존심"이라고 두 주먹 불끈 쥐며 강조했다.
'평창롱패딩' 인기와 '텐텐데이' 대박에 힘입어 신성통상은 올해 연매출 1조 5천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성통상은 '텐텐데이' 성공을 발판삼아 11월 9일부터 19일까지 11일간 '지오지아'를 비롯해 '탑텐', '폴햄' 등 모든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탑텐몰 패밀리 데이'로 또 한번의 대박을 노린다는 계획이다.
염태순 회장은 "나 역시 요즘 젊은 친구들처럼 꿈이 없었다. 실패를 안하려고 애쓰다보니, 망하지 않으려고 애써오다보니 결국 성공했다"고 자신의 성공 비결을 밝혔다.
35년째 토종 브랜드 고집…'패션 외길' 걷고 있는 염태순 회장염태순 회장 "'탑텐' 브랜드, 실망 시켜드리지 않도록 노력할 것"
끝으로 염태순 회장은 "'텐텐데이'에 대한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용기를 다시 갖게 됐다"며 "'탑텐'을 성공시켜 인사이트 독자 여러분에게 실망 시켜드리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염태순 회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빠져 나오는 길, 집무실 한켠에 옷가지들과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염태순 회장의 드레스룸이었다.
신성통상 관계자는 "염태순 회장이 패션업에 종사하다보니 '직접 입어봐야만 옷을 안다'는 철학으로 한켠에 조그맣게 마련하신 드레스룸"이라며 "실제로 다 입으시는 옷과 신발들"이라고 설명했다.
35년째 토종 브랜드를 고집하며 '패션 외길'을 걸어오고 있는 염태순 회장의 '탑텐'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패션에 대한 열정과 고집 때문은 아니었을까.
수입 SPA 브랜드를 꺾기 위해 그가 만든 토종 SPA 브랜드 '탑텐'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무척 기대가 된다.
■ 대담=정인영 부장, 정리=장영훈 기자, 사진=임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