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정용진 VS '백화점' 정유경, 선의의 경쟁 펼치는 남매
[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아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딸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은 같은 듯 매우 다르다.
우선 정 부회장은 재계 소문난 '프로 소통러'다. 이마트, 스타필드 등 자신이 총괄하는 사업의 주요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물론, SNS를 통해 수시로 신제품을 홍보하고 일상을 공개한다.
반면 정 총괄사장은 어머니인 이 회장을 닮아 '은둔의 경영자' 스타일을 고수한다. 이 회장은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사업본부 이사로 첫 출근을 한 후 공식적인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정 총괄사장 역시 2016년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개점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 외에는 외부에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린다. 오빠인 정 부회장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다.
더불어 정 부회장은 쉴 틈 없이 파격적인 경영 실험을 선보이는 스타일이다. 삐에로쇼핑, 레스케이프 호텔, 제주소주 푸른밤, 쇼앤텔, 부츠 등 분야를 넘나들며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도전 정신을 높이 살 수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문어발 경영으로 실패하는 사업도 점점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한다.
오빠에 비하면 정 총괄사장은 자신이 주력으로 삼은 사업에 온전히 집중해 밀고 나가는 스타일을 고수한다.
현재 백화점·면세점·화장품 등 세 가지를 핵심으로 두고 안 되면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들어 '오빠보다 낳은 동생'으로 주목 받는 정유경
이처럼 두 남매는 확연히 다른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요즘은 동생인 정 총괄사장의 '은밀하고 위대한' 경영 성과가 더 주목을 받는다.
신세계백화점을 각 지역 '랜드마크'로 키워낸 정 총괄사장은 2016년 백화점 신규 프로젝트 전략을 통해 다시 한 번 외연 확장에 나섰다.
그 결과 현재 본점인 서울 강남점은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친 후 연매출 2조원을 바라보며 국내 1위 백화점 자리를 다투고 있다.
오랜 시간 부동의 1위였던 롯데백화점 본점과 비슷한 규모로 성장한 것이다.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까지 된 부산 센텀시티점은 2016년 이후 영업 면적이 19만 6859㎡로 더 커졌고, 고급 브랜드가 대거 유입돼 매출이 늘었다.
2016년 대구복합환승센터에 신세계백화점이 생겼을 땐 업계와 지역민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백화점 최초로 아쿠아리움을 도입하고 옥상에 테마파크를 만드는 등 신개념 백화점으로 대구 시민들을 사로잡았다.
이외에도 정 총괄사장은 백화점 업계의 성장이 둔화하는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명동점, 김해점, 스타필드 하남점 등에 초대형 백화점을 오픈하는 공격적 경영의 진수를 보여줬다.
롯데·신라에 이어 가파르게 성장 중인 신세계면세점
면세점 부문에서 역시 최근 2년 사이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빅3'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명동점에 시내면세점 문을 연 2016년 당시 7.7%였던 신세계면세점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2.7%로 늘었고 매출도 1조원을 넘겼다.
지난 2월에는 롯데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반납한 향수·화장품과 탑승동을 묶은 DF1과 피혁·패션 사업권 DF5를 따내면서 존재감을 과시했으며 7월에는 강남점이 그랜드 오픈했다.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으로 당장 3분기 실적은 전망이 흐리다는 평이지만 최근 2년 사이의 가파른 성장세를 볼 때 신세계가 롯데와 신라를 이을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지난해부터 흑자 전환에 성공한 화장품 사업
평소 뷰티와 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진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필두로 화장품 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수년째 적자를 내면서 정 총괄사장의 속을 썩이던 화장품 사업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지난해 비로소 흑자 전환하며 한숨을 돌렸다. 정 총괄사장이 2012년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를 인수하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지 5년 만이다.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은 과감히 접기로 유명한 신세계에서 정 총괄사장은 바디비치를 신세계인터내셔날로 흡수까지 시키며 고집스럽게 밀어붙여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또 최근에는 한방 프리미엄 화장품 '연작'을 출시, 기획부터 제조까지 직접 챙겼다. 자연주의를 내세운 연작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와 LG생활건강 '후' 등을 위협하는 거물이 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뷰티 편집숍 '시코르' 역시 잘 키운 자식이 됐다. 2016년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에 1호점이 오픈한 이후 지난해 말에는 서울 강남대로 한복판에 '시코르 플래그십 스토어 1호점'이 문을 여는 등 빠르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이처럼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사업 분야에서 계속해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며 '조용하지만 강한' 경영자로 자리한 정 총괄사장.
신세계그룹을 최고의 유통 명가(名家)로 키운 이명희 회장의 리더십을 똑 닮은 그의 모습에 재계에서는 "과연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남매간 독립 경영으로 정용진 부회장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둘 간의 엎치락뒤치락이 이어질지도 주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