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구본무 회장, LG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 시킨 인물1995년 회장직 올라 23년간 '착한기업' LG그룹 진두지휘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연매출 30조원대 럭키금성을 160조원 글로벌 기업 LG그룹으로 탈바꿈 시킨 전설적인 인물이 있다.
지난 5월 타계한 '재계의 큰 별' 고(故) 구본무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95년 회장직에 올라 23년간 LG그룹을 진두지휘한 故 구본무 회장은 오늘날 착한기업 LG그룹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故 구본무 회장은 살아생전 당시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강조했었다.
이에 LG복지재단은 故 구본무 회장의 뜻에 따라 2015년 9월 'LG 의인상'을 제정해 지금까지 총 81명의 의인에게 'LG 의인상'을 수여하며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고 있다.
LG그룹은 사회적 책임을 다할 뿐만 아니라 기업으로서 가장 중요한 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평생 한(恨)이 된 LG반도체…71년 역사상 가장 뼈 아픈 사건정부 주도 '반도체 빅딜'로 현대그룹에 넘긴 故 구본무 회장
그룹 전자 계열인 LG전자가 생활가전 분야만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품질제일주의'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개발하는 故 구본무 회장의 개척정신 때문이다.
故 구본무 회장은 잘한 건 잘했다고 과감없이 칭찬했고 못한 건 못했다고 꾸짖었다. LG전자가 '가전명가'라고 불리는 이유도 故 구본무 회장의 이런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故 구본무 회장에게 있어 평생 한(恨)이 남는 사업 분야가 있었다. 이는 LG그룹 71년 역사상 가장 뼈 아픈 한으로 남아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의 주도로 이뤄진 '반도체 빅딜'은 지금까지도 故 구본무 회장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린다.
당시 故 구본무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겨야만 했다. 만약 故 구본무 회장이 LG반도체를 넘기지만 않았다면 반도체 시장 1위는 어쩌면 현재 삼성전자가 아닌 LG전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故 구본무 회장, 1989년 금성일렉트론 설립…LG반도체의 시작LG반도체, '국내 최초'·'세계 최초'라는 수식어 독식
LG반도체는 故 구본무 회장이 1989년 5월 금성일렉트론 설립을 계기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고금성일렉트론은 6년 뒤인 1995년 럭키금성이 LG그룹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LG반도체로 사명을 바꾸게 됐고 故 구본무 회장은 이듬해 상장을 감행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활동을 펼쳤다.
이후 LG반도체는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며 '국내 최초',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독식했고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4위, D램 6위에 이를 정도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故 구본무 회장은 승승장구하는 LG반도체가 그룹의 미래 사업이 될 것이라고 크게 확신했고 아낌없이 투자하며 LG반도체 규모를 점점 키워나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IMF 구제금융 사태로 故 구본무 회장의 애착 사업이던 LG반도체가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 현대그룹에게 LG반도체 넘기라고 압박버티다가 결국 눈물 머금고 반도체 포기한 故 구본무 회장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재벌 빅딜'에 나서며 LG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넘기라고 제안한 것이다. 故 구본무 회장은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버텨서 LG반도체를 지켜내려고 했다.
시중 금융기관에서 돈 줄을 아무리 조여와도 LG반도체만큼은 넘겨줄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의 압박은 점점 더 거세졌고 결국 백기를 들었다.
1999년 1월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故 구본무 회장은 긴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국가 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 기왕 포기하는 것 지분 전체를 현대에 넘기겠습니다"
故 구본무 회장은 김대중 정부 주도의 '반도체 빅딜'을 결국 수용했다. LG그룹이 눈물을 머금고 LG반도체를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하루 아침에 그룹 미래인 LG반도체 빼앗겨 '멘붕' 온 LG애착 사업 빼앗긴 충격에 故 구본무 회장 수개월간 두문불출
재계 일각에서는 당시 현대그룹이 대북 정책에 협조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김대중 정부에서 특혜를 준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애지중지하게 키워온 LG반도체가 정부의 압박에 의해 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자 故 구본무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고 심한 충격 탓에 수개월간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LG그룹 내에서는 당시 '반도체 빅딜'을 두고 "빼앗겼다"라는 표현을 썼을 만큼 아쉬움이 무척이나 컸다.
故 구본무 회장은 '반도체 빅딜'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개입한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과도 등을 지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故 구본무 회장 입장에서는 현대그룹에 힘을 실어준 전경련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일 수밖에 없었다.
현대전자 흡수 합병됐지만 적응 못한 LG반도체 위기11년간 주인없다가 SK그룹 인수…오늘날 SK하이닉스 탄생
현대그룹으로 LG반도체는 현대전자에 흡수 합병돼 이름도 현대반도체로 바뀌었지만 D램 시장 불황과 유동성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2001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현대반도체는 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꾸고 11년간 주인 없는 상태로 지내다가 2012년 SK그룹에 합병되면서 오늘날의 SK하이닉스로 탈바꿈했다.
SK하이닉스 전신은 LG반도체인 셈이다. SK하이닉스가 이름을 수차례 바꿔가며 새 주인을 찾을 때마다 LG그룹의 재인수 여부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었다.
하지만 마음이 상할대로 상했던 故 구본무 회장은 오히려 관심을 두지 않았다. 故 구본무 회장은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영위하고 있던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을 따로 분리해 'LG LCD를 설립했다
이후 네덜란드 필립스와 합작법인 형태로 유지하다 2008년 결별하고 오늘날의 LG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켰고 40조원 이상을 투자하며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선도기업으로 키웠다.
3분기 사상 최대 실적 내며 승승장구하는 SK하이닉스정부 압박으로 LG반도체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LG그룹 '희비'
반면 우열 곡절 끝에 SK그룹 품에 안긴 SK하이닉스는 순탄치 못한 성장 과정을 겪었지만 현재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5일 올해 3분기 매출액 11조 4,168억원, 영업이익 6조 4,724억원, 순이익 4조 6,922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모든 부문에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트리플 크라운'이다.
지난해 동기와 비교하면 매출액은 40.9%, 영업이익은 73.2% 늘어났다.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을 나타내는 영업이익률은 56.7%에 달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 코리아 연합군'으로 불리고 있다. 세계 D램 시장점유율만 70%를 웃돈다.
만약 故 구본무 회장이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LG반도체를 끝까지 지켰더라면 오늘날 세계 반도체 시장은 어떻게 됐을까. 10월 29일 반도체의 날을 맞아 LG그룹에게 있어 반도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