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민주 기자 = 1980년대 후반 막 해외브랜드가 주목받기 시작한 그때, 역으로 국산 시계를 전 세계에 알린 주인공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중소 시계업체 '로만손'이다.
제이에스티나의 전신인 로만손 김기문 회장은 중고가의 일본 시계 브랜드와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 사이에서 혁신적인 공법을 더한 커팅 글래스 시계를 탄생시켰다.
빛이 보이는 각도에 따라 반짝임이 드러나는 커팅 글래스 시계는 해외에서 유명세를 탄 뒤, 국내에서도 판매량이 크게 늘며 시계 시장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학생은 물론 직장인 등 남녀노소 누구나 로만손 시계를 당연한 필수품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 혁신적인 기술 공법으로 완성한 단일 시계 브랜드의 성공
작은 국내 시계 회사의 영업직으로 시작한 로만손 김기문 회장은 1988년, 스위스의 로만시온(ROMANSHORN)이란 작은 도시의 이름을 따 자체 브랜드 '로만손'을 선보였다.
특히 빛이 보이는 각도에 따라 입체감을 준 로만손의 '커팅 글래스 시계'는 1989년 출시 이후,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고가의 제품밖에 생산할 수 없었던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와 달리 커팅 글래스 시계는 일반 크리스탈에 혁신적인 공법을 더해 쉽게 깨지지 않으면서 반짝임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내구성까지 갖춘 로만손 시계는 미국 뉴욕에서 성공적인 시장 진입을 이루었으며, 뉴욕 여성들이 착용하는 시계로 알려졌다.
1994년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4층에 들어선 로만손 쇼룸에는 미국 전역은 물론 중남미에서도 시계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날마다 북새통을 이루었다.
◆ 고온·건조한 지역 특성 반영한 이온 도금 기술 개발로 중동 진출도 성공
미국과 중남미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김기문 회장과 로만손 임직원들은 두바이를 중심으로 한 중동 시장을 공략했다.
이때 김기문 회장은 중동 시장 공략의 중요한 열쇠로 한국보다 고온 건조한 지리적 특성에 주목했다.
플레이팅 방식의 도금이 벗겨지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이온 도금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MGP(멀티 골드 플레이팅) 공법인 로만손의 시계 도금 공법은 금이 얇게 도금되었을 때 긁히거나 쉽게 벗겨지는 품질 불안정성을 해소한 것으로, 세계 최초로 시계에 적용됐다.
비행기에 적용되는 첨단 이온 도금 기술과 마모 방지를 위한 공구 도금 기술에 착안해 고안됐으며, 티타늄, 세라믹, 니켈-구리족 합금으로 구성된 금속층을 시계 표면에 증착한 뒤 다시 금을 증착해 강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입체적인 반짝임을 주는 크리스탈 커팅 글래스 시계에 장기적 품질 보증이 가능한 로만손의 이온 도금 기술이 더해진 덕에 중동 바이어들의 열띤 구애가 시작됐다.
김기문 회장의 중동 방문 시에는 시계를 수입하기 위한 바이어들이 줄을 섰고, 김기문 회장과의 만남을 위해 서울을 처음 찾는 중동 시계 수입업체들이 생겨났다.
◆ 애플보다 15년이나 먼저 '로즈골드' 도금 선보인 로만손
중동에서도 성공을 이룬 김기문 회장은 로만손 브랜드를 일본 세이코 시계가 장악하고 있던 러시아로 가져갔다.
당시 김기문 회장은 장밋빛이 감도는 금색인 로즈골드를 선호하던 러시아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에 돌입했다.
이를 통해 금과 구리의 비율을 조절해 로즈골드 색상 도금을 입힌 시계를 선보이며 러시아 여성 소비자를 공략했다.
더해서 러시아 여성 소비자 맞춤형으로 액세서리처럼 활용할 수 있는 팔찌 모양의 시계를 출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게 선물하는 여성의 날을 활용하는 한편 러시아의 유명 여배우인 슐판 하마토바(Chulpan Khamatova)가 착용한 로만손 시계 이미지를 모스크바 대형 광고판에 내걸었다.
덕분에 로만손 시계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러시아 최고급 백화점에 입점했고, 세계 명품 박람회에 초청되는 최고의 영광을 안았다.
◆ 24K 순금을 시계에 접목한 코인 시계로 고급 시계 시장에 돌풍 일으켜
24K 순금을 시계에 코인 다이얼 디자인으로 입힌 '24K 골드 코인 시계'는 부를 자랑하는 수단이자 고급 선물로 널리 알려졌다.
시계의 둥근 판에 금궤 형상으로 잘라 다이얼에 접목한 이 시계는 새로운 형식으로 과감하게 시계판에 금화를 얹어 대히트를 기록했다.
김기문 회장은 제이에스티나 창립 30주년을 회고하면서 "24K 골드 코인 시계는 무르고 변형이 쉬운 순금을 시계에 접목한 획기적인 시도로 고급 시계 시장에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 국내 시계 브랜드 최초로 스위스 바젤 시계 박람회에 초대된 로만손
해외에서의 성공은 로만손을 중소 시계 회사에서 중견 브랜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로만손은 1996년 개최된 스위스 바젤 전시회에 국내 시계 브랜드로는 최초로 참가했다. 이후 1천만불 수출의 탑까지 수상하며 수출로 성공한 브랜드가 됐다.
김기문 회장은 "로만손 시계의 성공은 단시간에 이루어졌지만, 결코 운이 아니었다. 수출하려는 국가의 지역, 지리적 특성에 소비자 심리까지 깊이 연구한 뒤, 현지에 맞는 제품을 선보였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로만손 시계가 국내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스위스 바젤 전시회에 참가했던 때를 잊을 수 없다"며 "해외에서의 눈부신 성공으로 명품관에 소개됐다는 자부심은 오늘날을 유지하는 저력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