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상처) 하나하나가 형태를 파괴할 정도로 깊었다", "피를 닦아내자 얼굴에만 칼자국이 30개 정도 보였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해자 신모(20)씨의 담당의였던 이화여대 부속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남궁인 임상조교수가 한 말이다.
남궁인 조교수는 지난 19일 자신의 블로그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피해자의 피해 정도와 응급치료 당시 정황을 세세하게 묘사했다.
사람들은 그 글을 읽고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담했고,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깨달았다. 그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이와 관련해 정지우 문화평론가가 "그 글은 그(남궁인 조교수)를 통해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에 나오면 안 됐다"라고 비판했다.
정지우 평론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게재해 남궁 조교수의 글을 조목조목 짚으며 비판했다.
정 평론가는 "이 일은 여러 이슈 가운데 내게 가장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을 하게 한다"라면서 "개인적으로 끔찍하고 적나라한 묘사, 그에 수반되는 자극적인 감각과 노골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 감정 토로를 위해 피해자의 죽음을 그렇게 상세히 공표해도 됐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살인 사건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 잔인하게, 얼마나 처참하게 난도질당했는지 공표해도 될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 평론가는 남궁 조교수가 '감정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데 지나치게 중요한 것을 희생시켰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글은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에 나오면 안 됐다"라는 게 정 평론가의 주된 주장이었다.
다음은 정지우 평론가가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의 전문이다.
남궁인 작가의 글이 대단한 화제가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일은 근래 있었던 여러 이슈들 중에서 내게 가장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그것들을 모두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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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사소한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나는 끔찍하고 적나라한 묘사, 그에 수반되는 자극적인 감각과 노골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철저한 취향의 문제인데, 그런 글들이 힘들고, 불편하며, 그렇게 삶에 유의미한 선물이 된다고 느끼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글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세상에는 그렇게 '생생한 감각'을 전달하는 소설들이 많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글을 몰입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읽어낸다. 글을 통해 상상을 하고, 스스로의 상상력을 통해 생성한 이미지에 그만큼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글은 그 자체로─ 기술적으로 대단한 면이 있다.
특히 단순히 오락적이고 자극적인 측면을 제외한다면, 그러한 글쓰기가 실현해내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상상하게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런 글쓰기는 많은 경우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을 처절하게 공감케 하고, 안정적인 소시민적 생활영역의 보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저 바깥의 타자들의 존재를 일깨우는 데 무척 값진 역할을 한다.
또한 이러한 적나라하고 직접적인 묘사법은 때로 인간 내부의 은폐된 여러 욕망들을 드러내며 인간 존재에 관한 여러 복합적인 이해를 가능케 한다. 우리 내부에서는 여러 공격성, 잔인함, 파괴욕, 그에 관한 죄책의 감정 등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고, 그에 밀착한 글쓰기는 그러한 인간의 본성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불편함이나 불쾌함,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서라도,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번에 남궁인 작가가 쓴 글은 그 자극적이고 적나라하며 유려한 묘사를 통해 무엇을 실현했을까? 혹은 무엇을 희생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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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작가가 글을 쓴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짐작하기로는 모든 글쟁이에게 그렇듯이, 그에게 글쓰는 일은 오랜 습관일 것이고, 스스로 삶을 견디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식이자, 자기를 실현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가 겪은 충격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이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 역시 ─같은 글쓰는 사람으로서─ 백번도 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러한 글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무엇을 실현하고자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세상에 이렇게 악마같이 잔인한 존재가 있다니 절망스럽다 ─ 우울증이나 심신미약으로 처벌이 경감되는 법체계가 잘못되었다 ─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지 못한 것에 죄책감이 든다, 나아가 죽음을 늘 목도해야 하는 이 직업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 ─ 이 안타까운 존재에 관해 모두가 함께 공감해주면 좋겠다 ─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자연스럽지 않다.
아니면 그가 워낙 충격적인 일을 겪어서, 스스로도 그러한 혼란을 어떻게든 해소하고자 글을 썼고, 세간에 공개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렇게 자기 내적인 문제에만 집중했다고 하기엔, 사건이 너무 특정되어 있고, 세간의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함께 공감해주었으면 한다는 의도가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결국 그는 그의 글쓰기가 희생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 이상으로 실현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강하게 믿었던 듯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잔인한 강력범죄는 매일같이 벌어진다. 더군다나 범죄 중에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기반에 두고 있거나, 사회적인 약자에게 행해진 것이 너무나 명백하여 반드시 문제시되어야 하는, 담론이 되어야하는 범죄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이 범죄에는 그런 공론화의 여지가 있는 지점이 없다.
또한 의사로서,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윤리의식을 고민할 상황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말했듯이, 이미 청년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했고, 사실상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무력함을 느낄 수 있더라도, 사실 의료인으로서 존재론적인 고민을 할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여기에도 공론화되어야 할 지점이 없다.
아니면 '심신미약'을 처벌감경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법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훨씬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다. 거의 모든 피의자는 정당방위나 심신미약 등을 주장하지만, 어차피 그것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다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몰아붙여, 모든 인간에게 법적 방어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그렇게 손쉽게 무너뜨릴 수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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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자기가 겪은 경험의 절망스러움, 인간의 잔인함, 개인적인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이는 공론화의 글쓰기라기 보다는 지극히 사적이고 문학적인 글쓰기가 아니었나 한다.
그런데 그러한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를 위해, 피해자의 죽음을 그렇게 상세히 공표해도 되었을까? 만약, 그가 경찰이었으면 어땠을까? 매일같이 강력범죄들을 마주하는 경찰이 그가 범죄 현장에서 본 여러 처참한 일들을, 난도질 당한 신체를 매번 사진 찍듯이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심지어 모두가 알고 있는 특정 사건에 관해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자신의 무력함과 절망감을 공표한다면 어떨까?
이는 일단 수사비공개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지만, 윤리적으로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공익을 대변한다는 수사기관의 특성상 더 그렇게 여겨지겠지만, 나는 범죄현장을 목도한 의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적 치유나 토로를 위해, 특정될 수 있는(누구나 알 수 있는) 어떤 사건의 피해자에 대해, 그가 어떤 식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참하게 난도질당했는지를 마음대로 공표할 권리가 없다. 아니, 그런 권리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정 직업인은 자기가 겪은 사건을 스스로 견디고 침묵해야 할 책무가 있다.
만약 그러한 공표가 대단히 공익적인 이유에서, 공적인 담론을 위해서라면 허용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말했듯이, 이 사회의 굉장히 악질적인 사회구조를 폭로한다든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든지, 의료과정에서의 부조리함과 불합리성에 문제를 제기한다든지. 그러나 그의 글에서 나는 그런 명확한 공론화 지점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는 어떤 감정적인 문제를 위해 지나치게 중요한 것을 희생시켰다. 그에게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누군가의 신체를 공표하고 이용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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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어쩐지 글쓰는 사람의 양심이나 감정이 상당히 여러모로 얽히게 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개인적인 감정이나 취향을 넘어서, 나의 양심을 걸고 나는 그 글에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그 글은 그를 통해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에 나오면 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