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제과제빵 전문 프랜차이즈 SPC그룹 시초SPC그룹 전신인 '상미당' 창업주 故 허창성 명예회장 이야기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학비를 대줄 수 없으니 기술을 배워 자립해라"
상급학교 입시시험을 한창 준비하고 있던 14살 소년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비를 대줄 수 없다는 아버지의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에 밤새 울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좌절하지 않았다. 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해 하고 있던 소년은 며칠간 밤새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서양식 제과점에 찾아가 제빵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일본인 제과점 점원으로 일했던 소년은 어엿한 청년으로 자랐고 일본인이 떠난 동네에 '상미당(賞美堂)'이라는 이름의 작은 빵집을 열었다.
'맛있는 것을 주는 집'이라는 뜻의 '상미당'은 훗날 국내 최대 제과제빵 전문 프랜차이즈 기업이나 글로벌기업인 SPC그룹으로 발전한다.
삼립과 샤니, 파리바게뜨로 대표되는 국내 최고의 제과제빵기업이자 종합식품기업인 SPC그룹의 창업주 고(故) 허창성 명예회장 이야기다.
밤낮 가리지 않고 노력한 끝에 개발한 '크림빵'단순한 빵집에서 제과공장으로 탈바꿈 계기
'상미당'이 유명해진 것은 허창성 명예회장이 황해도 옹진에 문을 열었던 '상미당'을 정리하고 1948년 서울 방산시장 부근에 새로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허창성 명예회장은 일반 연탄보다 90%나 저렴한 가루연탄을 사용하는 '무연탄가마'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원가 절감은 물론 제품 가격을 내리는 효과를 불러왔다.
이에 힘입어 '상미당' 빵은 인기를 끌었고 허창성 명예회장은 이를 발판 삼아 '상미당' 이름을 '삼립산업제과공사'로 바꾸고 사업 영역을 단순한 빵집에서 제과공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삼립산업제과공사'는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비스킷을 주로 생산하며 판매망을 전국으로 넓히는 등 사세를 점차 확장해 나갔다.
이후 허창성 명예회장은 1963년 서울 신대방동에 공장을 준공하며 본격적인 빵 양산화에 나섰고 이때 탄생한 제품이 오늘날까지도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크림빵'이다.
허창성 명예회장은 '크림빵'을 생산하기 위해 당시 제과 선진국이었던 일본에 찾아가 제빵 기술자를 직접 초빙해 크림 주입기술을 배우는 한편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 끝에 '크림빵' 개발에 성공했다.
'크림빵' 대박 성공에는 허창성 명예회장의 '똥고집'소비자가 10원인데 재료비만 5원…'고(高)원가 고(高)품질'
'크림빵'은 출시하자마자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와 1970년대 가난했던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허기를 달래준 빵이 바로 '크림빵'이다.
또 외화벌이를 위해 한국을 떠났던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들에게는 '크림빵'이 모국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 빵이기도 했다.
'크림빵'은 한때 전체 공급량의 34%를 차지할 정도로 대박 상품이었다. '크림빵'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맛도 맛이었지만 좋은 재료만 고집한 허창성 명예회장의 '똥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10원짜리였던 '크림빵' 출시에 앞서 허창성 명예회장은 재료비 5원을 들여 빵을 만들자고 직원들에게 제안했다.
10원짜리 빵 한개의 원가는 2원, 제빵회사가 도매상으로부터 받는 가격은 5원 50전이던 시절 재료비 5원을 들여 빵을 만들자는 허창성 명예회장의 제안은 빵 한개에 50전만 이윤으로 남기겠다는 말이어서 직원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허창성 명예회장은 "품질이 좋은게 우선이다"며 "소비자를 만족시키면 도매상은 따라오게 돼 있다"고 직원들을 설득해 결국 재료비 5원에 소비자가 10원짜리 '크림빵'을 출시했다.
'크림빵' 이은 '호빵' 성공으로 제빵 전문기업 도약장남에 삼립식품, 차남에 샤니 넘긴 허창성 명예회장
도매상들은 앞다퉈 허창성 명예회장의 '크림빵'을 비싸게 사갔고 도매가는 자연스럽게 8원까지 올랐다. 허창성 명예회장의 '고(高)원가 고(高)품질' 전략이 통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허창성 명예회장은 1966년 '삼립산업제과공사' 이름을 또한번 '삼립산업제빵공사'으로 바꿨다.
허창성 명예회장은 사명 변경과 함께 선진 제빵기기를 도입해 대방동 공장 확장 공사를 마침으로써 제빵 전문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크림빵' 성공에 이은 허창성 명예회장의 또다른 히트작은 1970년 출시된 겨울철 국민 간식 대명사 '호빵'이다.
'호호 불어서 먹는 빵'이라는 뜻의 '호빵'은 40여년 넘는 세월동안 소비자들의 한결 같은 사랑을 받았고 현재는 명실상부한 삼립식품 대표 장수식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국내 제과제빵 기업의 기틀을 마련한 허창성 명예회장은 이후 장남인 허영선 전 삼립식품 회장에게 삼립식품을, 차남인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게 자회사인 샤니를 각각 넘겨줬다.
샤니 물려받은 허영인 회장, 한우물만 팠다 파리크라상 설립1988년 광화문에 '파리바게뜨' 1호점 오픈…SPC그룹 출범
차남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허창성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샤니는 당시 삼립식품 매출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자회사였다.
하지만 장남인 허영선 전 삼립식품 회장이 리조트 사업 등 무리한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가 외환위기를 맞아 1997년 부도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반면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빵에만 집중하며 한우물을 팠고 이를 발판삼아 1985년 비알코리아 설립과 함께 아이스크림 전문점인 '배스킨라빈스31'을 국내 들여와 프랜차이즈사업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1986년 '파리' 이름이 들어간 파리크라상을 설립하고 미국 유학 시절 프랜차이즈 시스템 경험을 살려 1988년 광화문에 '파리바게뜨' 1호점을 낸 뒤 시세를 점차 확장해나갔다.
당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파리바게뜨'는 좋은 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창업한 것"이라며 "맥도날드와 버거킹처럼 본사의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를 따르면 누구나 빵집을 운영할 수 있도록 시스템 마련에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오늘날 소비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파리바게뜨'는 결국 허창성 명예회장의 '상미당'이 모태가 돼 이어져 차남인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세운 제과 프랜차이즈인 셈이다.
올해 '창립 32주년'을 맞이한 SPC그룹 지주사 파리크라상아버지 가업을 종합식품기업으로 일군 허영인 SPC그룹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파리바게뜨' 성공을 기반으로 장남인 허영선 전 삼림식품 회장에게 넘어간 심립식품을 2002년 인수하며 아버지인 창업주 허창성 명예회장의 '가업'을 이끌게 됐다.
삼립식품을 품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 삼립식품 인수를 계기로 2004년 모회사 삼립식품과 샤니, 자신이 세운 파리크라상과 비알코리아 등의 계열사를 하나로 묶어 오늘날의 SPC그룹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SPC그룹 지주사 격인 파리크라상은 10월 17일 '창립 32주년'을 맞이하며 또한번의 대격변기를 겪고 있다.
33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1년 6개월 동안 미국제빵학교(AIB)를 다니는 등 남다른 빵의 열정으로 2010년 방영된 KBS 2TV '제빵왕 김탁구' 소재가 되기도 한 허영인 SPC그룹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파리바게뜨'를 중국과 미국, 베트남, 싱가포르에 이어 '빵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에 진출시켜 해외 매장을 운영하는 등 '한국빵'을 세계 알리고 있다.
아버지 허창성 명예회장의 '가업'을 이어 받아 단순한 제과제빵 공장이던 회사를 국내 내노라하는 종합식품기업인 SPC그룹으로 일군 허영인 회장.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