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윤혜연 기자 = 대문도 없어 뻥 뚫린 입구, 속이 훤히 비치는 유리로 된 문, 곰팡이가 핀 낡은 주방과 화장실, 아이가 빠지기 쉬운 깊은 우물이 있는 마당... 이 집에 두 모녀가 살고 있다.
최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전남 장흥에 사는 진아(가명‧9)와 필리핀에서 온 엄마 아일라(가명‧43)의 이 같은 사연을 공개했다.
진아는 7년 전 아버지를 여읜 후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간호사를 꿈꾸며 학교생활도 씩씩하게 잘 하고 있지만 엄마 없이 혼자 저녁을 보낼 때면 너무 무섭다. 진아가 사는 오래된 한옥은 대문도, 담장도 없는 뻥 뚫린 집이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 재래식 가옥에서 홀로 딸을 키우며 사는 엄마 아일라는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2009년 결혼을 하며 한국으로 건너왔으나 평소 술과 담배를 즐기던 남편은 결혼 후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어머니 혼자 있는 시댁도 여유롭지 않은 형편이기에 아일라는 진아를 데리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있는 읍내로 이사했다.
"테라피(마사지)도 하고 식당, 공장에 다 갔어요. 네일아트 일도 했어요. 애기를 혼자 키워야 하니까 이것저것 일을 했어요."
아일라는 서툴지만 우리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하나 뿐인 사랑하는 딸에게 걱정 없는 하룻밤이라도 선사해주고 싶은 아일라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지인의 소개로 월세가 없는 지금의 집에서 살게 됐으나 그만큼 오래되고 낡은 집이다.
길가 쪽으로 나 있던 대문은 고장나 헐어버렸고, 담장도 없어 집 앞으로 펼쳐진 농경지가 그대로 눈에 들어올 정도다.
담장 대신 넝쿨식물을 키워 조금이라도 집을 가려보려 했지만 턱없다.
특히 현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유리 미닫이문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다.
마당엔 깊은 우물도 있어 진아가 혼자 있을 땐 발을 헛디디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모녀가 함께 씻지도 못할 만큼 좁은 화장실 때문에 진아는 누구보다 빨리 홀로 씻는 법을 터득했다.
지금의 집은 두 모녀가 살기에 너무나도 위험하고 열악하다.
아일라는 딸 진아에게 안전한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주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와 공공자활사업에 참여하며 꾸준히 생계활동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아일라가 요즘 한 달에 버는 돈은 70~80만여 원. 한창 크고 배울 나이인 진아의 꿈을 이뤄주기엔 빠듯하기만 한 금액이다.
특히 한국의 겨울은 따뜻한 필리핀에서 온 아일라에게 더더욱 매섭다.
"보일러에 기름을 30만 원 넣어도 한 달 조금 지나면 또 넣어요. 돈을 더 벌려면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아직 국적이 없어요. 한국말 공부해도 시험이 너무 어려워요."
국적 취득 이야기가 나오자 아일라의 눈엔 눈물이 고인다.
시험 한 번에 소요되는 비용은 30만원 정도. 벌써 세 번이나 떨어졌다.
가르쳐줄 사람 없어 어렵기만 한 한국어,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아일라는 진아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고파 교재 한 권으로 귀화시험을 위해 열심히 독학한다. 매주 목요일은 다른 일을 재쳐두고 공부만 하는 날로 정하기도 했다.
진아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힘겨워하는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착한 딸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주변에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집주인도 이젠 땅을 매매할 예정, 언제고 집을 비워줘야 할 상황이다.
아일라는 진아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지만 보증금이 부족해 신청하지 못했다.
딸과 함께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 너무나도 간절하다.
희망브리지는 열악한 집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진아네 모녀에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선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기부는 희망브리지 재단 홈페이지와 카카오 같이가치를 통해 가능하다.
후원금은 진아네에 더불어 전남 장흥군 재난위기가정 5세대의 깨끗하고 안전한 주거환경 조성에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