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이재현 CJ회장 부친 이맹희가 이병철 눈밖에 밀려 삼성家서 쫓겨난 '결정적 사건'

인사이트(좌)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 사진제공 = CJ그룹, 삼성그룹


국내 재계 1위 기업이자 브랜드 가치 105조 삼성그룹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국내 재계 1위 기업이자 글로벌 브랜드 가치만 무려 105조원에 달하는 삼성그룹 총수는 이건희 회장과 그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건희 회장은 4년 전인 지난 2014년 5월 10일 밤 갑작스러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현재 병상에 누워 있어 경영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며 '세계 반도체 1위' 삼성전자와 삼성그룹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삼성전자는 현재 반도체 의존도 심화에 대한 우려를 털어내기 위해 스마트폰 사업 내 다양한 전략을 구상하는 등 미래 먹거리 창출에 대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희-이재용 부자(父子)가 재계 1위 삼성그룹 총수 일가가 되지 못할 뻔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인사이트(좌)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우)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 사진제공 = CJ그룹, 삼성그룹


이맹희 회장을 '비운의 황태자'로 만든 '사카린 밀수사건'


사실 이건희 회장에게는 큰형이 있었다. 오늘날 문화 콘텐츠 기업으로 우뚝 선 CJ그룹 고(故) 이맹희 명예회장이 바로 큰형이다.


삼성그룹 후계자를 장남 이맹희 명예회장에서 3남 이건희 회장으로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2년 전인 1966년 발생한 '사카린 밀수사건'이다.


사카린은 187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에 의해 처음 발명된 인공감미료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카린은 설탕보다 더 단맛을 내지만 열량이 없어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인식됐다.


국내에서도 인공감미료인 사카린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비싼 설탕을 대신해 널리 사용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삼성그룹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CJ그룹 故 이맹희 명예회장은 이 시카린 덕분에 삼성그룹 후계자에 올랐다가 사카린 때문에 아버지 눈밖에 밀려 삼성가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인사이트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 사진제공 = 삼성그룹


아버지 대신 삼성 공식 후계자로 경영 나선 이맹희 회장


이 때문에 故 이맹희 명예회장은 아버지 뒤를 이어 구슬땀을 흘리며 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실질적인 삼성그룹 경영권을 결국 셋째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넘겨주는 쓰디쓴 아픔을 맛봐야 했다.


그렇다면 '사카린 밀수사건'이란 무엇이길래 장남 故 이맹희 명예회장이 아버지 눈밖에 밀려 삼성가에 쫓겨나는 '비운의 황태자'가 된 것일까.


'사카린 밀수사건'은 1966년 5월 24일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는 부산세관을 통해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를 밀수한 뒤 판매하려다가 정부 당국에 적발된 사건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은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인해 회사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하고 당시로선 거금인 2천 400만원의 벌금을 물었으며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장남 故 이맹희 명예회장은 물러난 아버지 故 이병철 회장을 대신해 1968년 삼성 모태 기업인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삼성전자 부사장 등 그룹 주요 직위에 올라 공식 후계자로서 행보를 내디뎠다.


인사이트이병철 회장 장남이자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 사진제공 = CJ그룹


이맹희, 아버지 이병철 회장 눈밖에 밀린 '비운의 황태자'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삼성그룹 후계자는 장남인 故 이맹희 명예회장이라는 것은 기정사실화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故 이맹희 명예회장의 경영 행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카린 밀수사건' 발생 3년이 지난 1969년 故 이병철 회장이 경영 복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투서 사건이 발생했다.


사카린 밀수와 탈세 등에 故 이병철 회장이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긴 투서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다.


故 이맹희 회장은 아버지 故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사카린 밀수사건'을 청와대에 투서했다는 의심을 받아 부자 관계가 틀어지게 됐고 눈밖에 밀려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삼성가에서 쫓겨난 장남 故 이맹희 회장의 빈자리는 8남매 중 일곱째이자 아들로서는 셋째 아들이었던 이건희 회장이 차지하게 됐고 삼성그룹 후계자로 올라섰다.


인사이트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 / (좌) 사진제공 = CJ그룹, (우) 뉴스1


아내 손복남, 안국화재 지분 맞교환으로 CJ그룹 탄생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후계자로 지목됐고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이 별세한 뒤 반도체와 전자, 제당, 물산 등 삼성그룹 주요 지분들을 승계 받았다.


반면 장남 故 이맹희 회장 아내 손복남 여사가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지분 등을 받는데 그쳤고 지방과 외국에서 살면서 삼성그룹과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러던 중 1994년 안국화재 상무(CJ제일제당 경영고문)를 지낸 손복남 여사가 안국화재 지분을 이건희 회장의 제일제당 주식과 맞교환해 제일제당을 삼성에서 분리해 오늘날 CJ그룹이 됐다.


이후 故 이맹희 회장은 2012년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7000억원대 소송을 제기했다가 1·2심에서 모두 패했고 화해를 시도했지만 결국 화해를 하지 못했다.


故 이맹희 회장은 3년 뒤인 2015년 8월 14일 동생 이건희 회장과 화해는 커녕 아버지 故 이병철 회장과의 애증 관계도 털어내지 못한 채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