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익명 소통 앱 '블라인드' 개발해 직장인 '한풀이' 성지 만든 문성욱 대표

인사이트Facebook 'TEAMBLIND'


[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요즘 기업 임원들 사이에서는 '블라인드'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심장이 떨린다는 말이 나온다. 


블라인드가 직장인의 익명 소통 커뮤니티로 몸집을 불리면서 회사의 각종 비리와 갑질을 고발하는 장으로 역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블라인드


대기업 다니면서 몸소 느낀 '소통 창구'의 필요성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2013년 블라인드를 처음 탄생시킨 문성욱 대표는 자신이 다니던 대기업 네이버의 사내 게시판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가 네이버에 매각돼 자연스럽게 네이버로 일자리를 옮겼는데, 문 대표는 그곳에서 대기업 특유의 소통 단절과 불합리함을 경험했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바로 사내 익명 게시판이었다. 


그곳에는 재미와 위로, 공감이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머리나 식힐 겸 게시판을 드나들었지만 그는 곧 소통만이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돌파구란 생각이 들었다. 


네이버를 떠나 2011년부터 티몬에서 서비스 기획 파트를 담당할 때도 조직이 커지면 어쩔 수 없이 소통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이 생긴다는 것을 느꼈다. 이를 해결할 도구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는 계기였다. 


인사이트KBS 


미투 운동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사태가 기폭제


처음엔 주변에서 모두 반신반의했다. 수동적인 직장인들이 앱을 사용하면 얼마나 사용하겠냐며 문 대표를 뜯어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익명 앱 블라인드를 통해 용기를 내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문 대표의 서비스가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또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승무원 기쁨조 논란' 등이 블라인드를 통해 빠르게 번지면서 불을 지폈다. 


특히 국내 대표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블라인드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건씩 회사 관련 비리를 폭로하면서 이용량을 늘려갔다. 


인사이트Facebook 'TEAMBLIND'


철저한 익명성 보장돼 직장인이 '믿고 하소연하는' 커뮤니티 


문 대표는 블라인드 앱의 글 삭제 권한을 작성자 본인에게만 주고 있다. 만약 신고가 들어와도 타 사용자에게 보이지 않는 '숨김' 처리가 될 뿐 글 자체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당연히 기업에서 삭제 요청을 할 수도 없다. 


익명성도 철저히 보장한다. 아무리 기업 비리를 폭로하고 부조리에 대해 하소연해도 그 글을 누가 썼는지는 블라인드 내부 관리자조차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블라인드가 허위 신고 및 무분별한 비방의 장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문 대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특정인 지칭이나 기밀·허위사실 게시 등을 금지하는 운영 가이드를 만들어놨다. 신고 기능을 통해 어느 정도 자정 적용이 이뤄져 현재까지는 이용에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이처럼 '믿고 하소연할 수 있는 커뮤니티'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블라인드에 직장인이 한 명이라도 가입한 회사는 현재 한국에 3만여 개 가까이 된다. 


100명 이상의 직원이 있는 회사에서 50명 이상이 가입하면 회사 채널이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약 2천 개의 회사가 별도 채널로 운영되고 있다. 


인사이트Facebook 'TEAMBLIND'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통하는 블라인드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마음껏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비리를 고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닐 터. 


문 대표는 처음부터 해외 시장도 넘봤다. 2015년부터 그는 미국에서도 블라인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아마존을 시작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우버, 구글, 페이스북, 링크드인 등 실리콘밸리의 거대 IT 기업 재직자들이 블라인드를 적극 활용 중이다. 


인사이트Instagram 'uber'


국내에서 항공사 갑질 폭로가 블라인드 앱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면 미국에서는 우버 성희롱 사태가 비슷한 역할을 했다. 


지난해 우버는 직장 내 성희롱과 사내 남성 우월적 분위기 등으로 미국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우버의 전직 엔지니어 수잔 파울러가 개인 블로그에 직속 상사의 성희롱을 고발했고, 이것이 블라인드를 통해 더 넓게 퍼져나가면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우버 경영진이 직원들이 블라인드를 이용하지 못하게 통제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우버 직원들을 오히려 통제 이후 블라인드에 더 많이 가입해 3주 만에 1천 명 이상의 가입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인사이트Facebook 'TEAMBLIND'


갑질과 비리 폭로를 넘어 '따뜻한 공감의 장'으로


사실 블라인드가 무조건 '갑질과 비리 폭로'를 위해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문 대표가 네이버 재직 시절 사내 익명 게시판을 통해 소소한 즐거움을 얻고 위로를 받았듯, 블라인드 또한 앞으로는 더욱 따뜻한 커뮤니티의 역할도 충분히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익명성에 기대 이 시대 월급쟁이들끼리 자유롭게 소통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장. 블라인드의 탄생으로 직장인들은 조금이나마 숨통 트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