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폐암 말기'인데 나라 걱정에 '산소 호흡기' 꽂고 대통령 만난 SK 최종현 회장

인사이트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 / 사진 제공 = SK그룹


[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먼 미래를 예측하고, 빛나는 통찰력과 강인한 도전정신으로 SK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진정한 기업가.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을 경제인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오늘(26일)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타계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SK그룹이 최 선대회장의 20주기를 맞아 그의 업적과 경영 철학을 기리고 있는 가운데, 그의 '경영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SK그룹


◇ 남다른 경영 수완


형인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뒤를 이어 1973년 11월 선경그룹 회장(現 SK그룹)으로 취임한 최 선대회장은 현재 SK그룹 사업 구조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 선대회장은 취임 당시 "선경그룹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포부에 많은 사람들은 조롱하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선경그룹은 삼성그룹과 현대그룹 굴지의 대기업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섬유회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는 '원대한 꿈'을 치밀한 준비와 실행력으로 현실로 이뤄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SK그룹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現 SK이노베이션)를 인수해 이전까지 그룹의 주력 사업이었던 섬유 사업과 결합해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수직 계열화를 구축했다.


이후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유공을 앞세워 해외 유전 개발에 나섰다.


성공 확률이 단 5%에 불과해 주변의 만류가 심했지만 최 선대회장은 뚝심 있게 사업을 추진했고 1984년 북예멘 유전 개발에 성공했다. '무자원 산유국'이라는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현재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도 최 선대회장의 '작품'이다.


최 선대회장은 이동통신사업 진출에 10년 이상 공들이며 준비했다. 산업 동향 분석을 위해 1984년 미국에 미주 경영실을 세웠고, 이후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에 투자를 하고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등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이런 앞선 준비 끝에 1992년 압도적인 격차로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됐다. 그런데 그는 어렵게 얻은 사업권을 자진 반납해 모두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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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대회장이 사업권을 반납한 이유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 관계'여서 특혜 의혹이 일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수장이었던 자신이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되면 재계의 화목이 깨질 것으로 우려해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그는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은 2년 뒤 실현이 됐다.


문민 정부 시절인 1994년 제1이동통신을 서비스하고 있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최 선대회장의 혜안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런 이유로 최 선대회장은 재임 당시 '10년을 내다본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타계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업적과 경영 철학이 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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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를 먼저 생각한 기업가


최 선대회장은 SK그룹을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중 하나로 만든 뛰어난 기업가이자 늘 나라 경제를 먼저 생각한 '애국자'였다.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1997년 10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최 선대회장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청와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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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비상 조치를 늦추면 나라 경제가 큰일 난다"며 금리 인하 등 특단의 조치를 건의했다.


11월에도 대통령을 만났지만 최 선대회장의 '충언'은 모두 무시당했고, 결국 우리나라는 1997년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 달러 이상의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경제 살리기를 호소하고,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최 선대회장은 다음해 8월 세상을 떠났다.


최 선대회장이 남긴 유언 역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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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대회장은 타계 직전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火葬)하고 훌륭한 화장 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묘지 난립으로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평소 안타까워했던 그가 사회 지도층 인사 중 최초로 화장을 택한 것이다.


이 유언은 우리나라 장례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최 선대회장 사후 한 달 만에 '한국 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가 결성돼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이 전개됐고 실제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998년 20%에 불과했던 화장률은 이듬해 30%를 넘는 등 매년 급증했고, 현재는 82%에 달할 만큼 대중화됐다. 


SK그룹은 최 선대회장의 유언에 따라 2010년 1월 500억원을 들여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 공원에 장례 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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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


최 선대회장은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재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여기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1973년 광고주가 없어 폐지 위기에 처한 장학퀴즈(1973년 2월 18일 첫 방송) 단독 광고주로 나섰고, 후원을 결정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조건 없이 지원해도 괜찮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SK그룹


최 선대회장의 이 같은 신념 덕분에 장학퀴즈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고, SK그룹은 지금도 장학퀴즈를 단독으로 후원하고 있다.


최 선대회장의 인재 경영은 이뿐만이 아니다.


제1차 오일 쇼크 직후인 1974년, 선경그룹을 포함해 국내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최 선대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순수 교육 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사회로부터 관심과 지원이 인색했던 사회과학, 순수자연과학 분야를 육성하여 사회 발전에 기여할 고급 인력 양성을 목표로 두고 있다.


최 선대회장은 이를 통해 세계 수준의 학자 양성을 목표로 각종 장학 사업을 실시, 지금까지 모두 717명의 국내외 명문대학 박사 학위자를 배출했으며 3,600여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SK그룹


1998년 최태원 現 SK그룹 회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장학 사업 외에도 베이징 포럼, 상하이 포럼 등 세계적 수준의 국제 학술 포럼을 개최하고 아시아 7개국 18개 기관에 연구 지원 센터를 설립해 인재 양성의 범위를 글로벌로 확장, 운영하고 있다.


"10년 앞을 내다본 기업가",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기업가"


재계가 평가하고, 또 기억하는 최 선대회장이다.


기업의 안위보다 나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은 최태원 現 SK그룹 회장이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SK그룹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남다른 인수합병(M&A) 능력도 물려받아 SK그룹을 재계 순위 3위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똑 닮아서인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사업 확장을 위한 M&A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최 선대회장의 혜안과 통찰 그리고 실천력은 모두 기업가들이 배워야 한다"며 "고인의 경영 철학을 올곧게 추구해 사회와 행복을 나누는 SK그룹은 분명 1등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