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김미향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8살배기 딸 박나원 양의 목에 플라스틱 관을 넣고 뺀다.
가래로 관이 막히면 나원 양의 호흡이 곤란해져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원 양은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를 사용한 후 기도 협착증에 걸렸다.
지난 12일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기업의 보상은커녕 사과 한 마디 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가습기 메이트' 피해자들을 조명했다.
가녀린 목에 구멍을 뚫고 관을 끼워 살아야 하는 딸의 모습에 김씨는 마음이 찢어진다. 그에 더해 막대한 비용 부담까지 짊어지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김씨는 "1회용 플라스틱 관 하나에 1만 5천원이라 금액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정부에 오랜 시간 끈질기게 항의한 끝에 의료기기 비용을 지원받게 됐으나 매달 부산 집과 서울 병원을 오가는 생활에 점점 지쳐만 간다.
병원비 3만원 남짓이 지원의 전부. 한 번에 20만원 가까이 드는 차비 등은 온전히 피해자의 몫이다.
가습기 메이트 제품 피해자는 나원 양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피해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에서 이물질을 뽑아내며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SK케미칼과 애경은 묵묵부답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는 뒤늦게나마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4천억원의 자금을 들여 보상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SK케미칼과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들은 어떠한 배상도 받지 못했다.
옥시류 제품에 들어 있던 PHMG 등의 원료는 폐섬유화를 초래한다고 판정이 났지만 가습기 메이트에 사용된 CMIT·MIT는 폐섬유화 등 가습기 살균제 피해 증상과의 직접적 연관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CMIT·MIT가 폐손상 등 소비자의 생명 및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판명났으나 이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는 수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폐섬유화와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한 지지부진한 동물 흡입 실험만 진행 중이라 피해자들은 분통이 터지는 상황이다.
이 같은 이유로 SK케미칼과 애경은 가습기 메이트로 인한 실제 사상자가 있음에도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있었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제대로 된 보상 절차를 밟아도 모자란 상황에서 사과 한 마디 없이 나 몰라라 외면 중인 것이다.
해당 내용에 대해 SK케미칼 측은 인사이트와의 통화에서 "현재 추가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규명이 유관기관에서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린다"라고만 밝혔다.
정부 조사 결과 가습기 메이트 속 CMIT·MIT와 피해 증상 간의 직접적 연관성이 나타나면 공식 사과와 배상에 나설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그런 상황을 가정해서 인터뷰할 수는 없는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애경 관계자 역시 "현재 정부에서 관련 조사와 실험을 진행 중이며 그 결과가 조속히 나오길 바라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과가 나오는 대로 책임질 부분은 최선을 다해서 책임지겠다"라고 덧붙였다.
늘어지는 정부 조사와 기업들의 책임 회피 속에 오늘도 죄 없는 피해자들만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