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입국장 면세점 도입 방안을 검토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수석 회의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이 입국장 면세점 도입 검토를 지시하면서 그동안 불발에 그쳤던 입국장 면세점 도입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현재 여행객 다수와 중견·중소 면세점은 반색하고 있는 가운데, 기내 면세점을 운영하는 항공 업계와 출국장 면세점을 운영 중인 면세 업계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입국장 면세점이 도입되면 기존 면세점 매출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
성사 가능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반발이 있고, 또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은 입국장 면세점 도입은 실제 시행까지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입국장 면세점 도입은 해외여행을 하는 국민의 불편을 덜고 해외 소비 일부를 국내 소비로 전환할 수 있다"며 "입국장 면세점 도입 방안을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특히 중견·중소 면세점들에 혜택이 많이 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함께 검토해주기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현재 국내 공항 내 면세점은 출국 시에만 이용할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미 지난 2003년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의원입법 발의를 통해 입국장 면세점 도입을 추진했지만 기획재정부, 관세청, 항공사 등 유관 기관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공항공사는 여객 편의 개선 및 공항 경쟁력 강화 등으로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입국장 면세점 도입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공항공사는 이미 여객 터미널 1층 수화물 수취대 등 3곳(706㎡)에 입국장 면세점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다.
여행객 다수도 입국장 면세점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 출국 시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건을 여행 내내 소지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천공항공사가 2002∼2017년 공항 이용객 2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4%가 여행객 편의 증대를 이유로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찬성한 바 있다.
이미 주변국의 경우 입국장 면세점 도입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73개국, 137개 공항이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하거나 도입을 계획하고 있으며, 중국 베이징국제공항과 일본 도쿄나리타국제공항은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기류에도 정작 항공 업계와 면세 업계는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입국장 면세점이 생기면 기존 면세점 매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실제로 국내 항공사들은 그간 입국장 면세점과 같은 기능을 하는 기내 면세점 사업을 통해 상당한 매출을 올렸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기내 면세점 사업으로 거둔 매출은 1,699억원, 아시아나항공은 964억원으로 나타났다. 제주항공과 진에어 등 저가항공사(LCC)를 포함하면 기내 면세점 매출은 3,161억원에 달한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입국장 면세점이 도입되면 항공사들의 기내 면세점 매출은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며 "또한 도착 후 면세품 구매 수요 증가와 세관 검사 절차 강화로 수하물 회수를 비롯한 입국 절차에 두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돼 인천국제공항의 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나눠먹는 파이가 줄 수밖에 없다"면서 "여기에 중견·중소 면세점은 해외 브랜드 유치 및 운영 능력이 높지 않아 정부가 의도한 데로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항공 업계와 면세 업계가 난색을 표하면서 입국장 면세점 도입은 당장은 어려워 보인다.
정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항공 업계와 면세 업계를 어떻게 설득하냐에 따라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대한 뚜렷한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진정 고객 편의를 위해서라면 출국장 면세점보다 인도장을 늘리고 금액 한도를 늘리는 것이 더 시급한 방안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면세품 구매 한도는 1인당 600 달러로, 그 이상을 구매하려면 세금을 내야 한다. 일본은 1,800 달러, 중국은 1,165달러인데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중견·중소 면세점에게 혜택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입국장 면세점 효과를 보려면 근본적으로 면세품 구매 한도를 늘려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면세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파이 나눠 먹기식 경쟁이 치열해져 어느 한쪽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