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성아 기자 = 드디어 광복절이다.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
광복절에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이들 뒤에서 활동비를 남몰래 지원한 기업들을 기억해야 한다.
독립운동에 '자금줄' 역할을 했던 수많은 민족기업 중 우리가 과식했을 때 약국에 들러 자주 사먹는 '활명수'를 제조한 제약 회사도 포함돼 있었다.
이 제약 회사의 정체는 동화약품이다.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의 민강 사장은 누구보다 투철한 애국심을 지니고 있었다.
민강 사장은 국내 독립운동가들의 연락을 담당하며 서울 연통부의 책임자를 맡아 활동했다.
당시 그는 활명수를 팔아 얻은 이익 일부를 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로 돈을 전달하기 어려워지자 그는 활명수를 중국으로 보내 직접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때 당시 활명수의 가격은 한 병당 50전이였다. 막걸리 한 말과 설렁탕 두 그릇 정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민강 사장은 얼마 뒤 임시정부에 발송할 비밀문서를 목판에 새기다 발각돼 옥살이했다. 옥고를 치른 민강 사장은 건강이 악화해 지난 1931년 48세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민강 사장의 애국심은 그가 사망한 뒤에도 이어졌다.
동화약품의 5대 사장인 윤창식 선생은 민족 경제 자립을 목표로 '조선산직장려계', '신간회' 등 항일운동단체를 지원하다 옥고를 치렀다.
그는 당시 "우리의 자본으로, 우리의 제약기술로, 우리의 노동력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영세 중소기업 민족자본을 육성시켜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또 윤창식 사장의 대를 이어 윤광열 회장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의 독립운동 활동을 지켜본 그는 애국, 구국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실천했다.
윤광열 명예회장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일본에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됐다. 하지만 그는 탈출하는데 성공해 상하이 주호지대 광복군 중대장을 맡았다.
우리가 체하면 찾는 '까스 활명수'는 시작부터 우리 민족의 건강을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사명감 하나로 만들어졌다.
이윤추구보다는 애국정신을 펼치며 광복을 되찾도록 도운 동화약품은 진정한 애국 기업이다.
한편 동화약품은 해방된 이후에도 동화약품은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일손 돕기, 농산물 직거래 및 농촌 등 다양한 교류 활동을 통해 지역 농가와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