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한국 사회에서 올해 초 '미투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권력을 쥔 남성들의 성폭행, 성추문 등 성폭력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됐다.
일부 연예인들은 사실상 영구 은퇴를 당했고, 안희정 전 충북도지사는 여비서와 성폭행 진실공방을 벌이면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미투 운동'의 광풍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간 지 불과 반년이 흐른 지금, 경제계에는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인권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듯 싶다.
경제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권력을 쥔 남성의 힘이 막강한데 반해 상대적 약자인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더욱 어려운 구조다.
'미투 운동'의 정신은 간데 없고, 예전의 '문제아들'이 경제계에 다시 잇달아 복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안타까운 심정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서종대 전 한국감정원장이다. 성추문으로 감정원장에서 해임된 인사가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의 차기 원장으로 단독 추대됐기 때문이다.
12일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에 따르면 주산연은 오는 29일 이사회를 열어 서종대 차기 원장 후보를 놓고 가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문제는 현재 주산연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서 후보가 지난 7일 열린 연구원 원장추천위원회에서 단독 후보로 추천 받았다는 점이다.
물론 서 전 원장은 2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평생 건설교통부에서 행정을 담당했던 주택 건설 전문가로 꼽힌다.
'존재감이 없는' 주산연의 위상이 단번에 올라갈 수 있다고 일각에서는 환영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공무원에서 승승장구하던 서 전 원장은 한국감정원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6년 11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성희롱을 일삼아 해임된 '문제아'였다.
서 후보자는 당시 한 행사가 끝난 후 식사 자리에 참석한 여직원에게 "양놈들은 좋아하지 않고 중국놈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어 "아프리카에서는 예쁜 여자는 지주의 노예가 되고 안 예쁜 여자는 병사의 노예가 된다" 등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성추문으로 쫓겨났던 인사가 주산연의 원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미투 운동'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진일보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장에서는 큰 변화의 조짐은 없는 듯 싶다. 바로 기득권을 쥔 남성들이 아직도 변화를 거부하는 이유에서다.
주산연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인물을 원장으로 선임하는 '시대착오적인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믿는다.
성희롱 발언으로 공공기관에서 해임 처분을 받은 '문제아'가 불과 1년여 만에 민간기관의 수장으로 다시 리더가 되는 것은 '미투 운동'의 철학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