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개적인 대외 활동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후 해외 출장만 조용히 다니면서 칩거에 들어갔다.
그런 이 부회장이 지난달 초 인도 노이다 휴대폰 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공식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만나 살아있는 권력 1인자와 상견례를 했다.
그리고 정확히 1개월이 지난 8월 8일 오후, 삼성그룹은 향후 3년간 총 180조원을 투자하고 청년 4만명을 직접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최고위급 경영진들은 이번 투자안을 담는 과정에서 '2가지 키워드'를 가장 신경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로 오너 일가에 대한 '이미지 쇄신'과 추락한 기업 신뢰도를 '회복'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실 매년 60조원씩 3년간 투자하고 직간접으로 70만명을 채용하는 초대형 계획은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가능할 수 없는 일이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이번 투자 발표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993년 6월 7일 독일에서 천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버금가는 수준의 '대전환'으로 판단했을 정도였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 임직원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나온 이건희 회장의 선언은 삼성그룹의 체질을 과감하게 바꿨고 결과적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
글로벌 일류 기업인 삼성그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창업 이후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오너 중 처음으로 법정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국민들에게 큰 지탄을 받았다.
이번 투자 발표가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는 강조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8·8 투자 선언'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언제 국민들 앞에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투자와 고용 방안 및 기업의 사회적 공헌과 상생 방안을 발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
삼성그룹 차원에서는 어쩌면 '프랑크푸르트 선언'보다 더 중요한 발표가 될 수 있다고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삼성그룹의 대국민 사과와 사회공헌 방안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실제로 3년 전인 지난 2015년 6월 메르스 확산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직접 언론 앞에 등장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월 8일 이뤄진 삼성그룹의 '8·8 투자 선언'은 조용하게 보도자료 형식으로 언론에 배포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유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이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는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청와대의 일부 경제 참모들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 삼성전자 수원 공장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만나는 '이벤트'를 놓고도 청와대 내부에서는 '삼성에 구걸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나왔다고 한다.
결국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악화된 여론이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상황에 청와대 내부에서도 재벌에 '구걸을 한다'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삼성그룹 측에서는 오너가 나서지 않고 조용히 투자를 발표하는 선에서 매듭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이 언론에 모습을 보이는 일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부정적인 여론을 희석시키고 삼성그룹 오너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지난달 인도 공장에 등장한 것과 6일 김동연 부총리를 영접한 것도 그런 변화의 '신호탄'이라는 게 재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