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생명유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인 '수액(輸液)'을 한자로 표기할 땐 물 수(水)가 아닌 나를 수(輸)를 쓴다.
수액이 환자의 상태에 적합한 각종 영양소를 체내에 공급하고 항생제와 같은 약물을 투여하는 데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 수액은 1945년 '조선중외제약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해방둥이 기업 JW중외제약과 그 역사를 함께 한다.
조선중외제약소가 1953년 '대한중외제약'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본격적으로 현대적 기업 형태를 갖출 당시, 수술 후 물을 마시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수분을 적시에 공급해줄 마땅한 방법이 전무했다.
국내에는 수액을 생산하는 업체도 없었거니와 의사들조차 수액 요법을 잘 아는 이가 드물었던 것이다.
JW중외제약의 창업자인 故 성천 이기석 선생은 이때 수액 개발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사업상의 여건을 숙고한 끝에 수액 개발에 나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이기석 선생은 유리병과 고무마개 등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고 열 분포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고압증기멸균기를 직접 제조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1959년 마침내 '5% 포도당' 수액 제품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며 수액 사업의 문을 활짝 열었다.
수액 생산 초창기에는 미군이 사용하다가 버린 병을 회수해 모래나 수세미로 닦아 사용할 만큼 상황이 열악했다.
1970년대 들어서 비로소 튼튼한 유리병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무겁고 잘 깨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JW중외제약은 유리병을 대체할 최적의 용기를 모색하기 시작해 1997년 처음으로 Non-PVC 기반 설비를 도입했고 2004년에는 수액 용기의 혁신인 Non-PVC 수액백 생산 기술력을 확보했다.
그리고 2년 후 1,600억원을 투자해 당진공장에 Non-PVC 종합생산체제를 갖추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Non-PVC 수액제 생산 기지를 갖추게 됐다.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1945년에 탄생한 JW중외제약은 일본을 상대로 통쾌한 '딜'을 따내기도 했다.
일본 쥬가이 제약이 주사제 용기로 사용되는 유리병을 한국에서 공급받으려고 할 때 JW중외제약은 이미 세계적 품질 수준을 확보하고 있었다.
일본을 상대로 완제품 자체를 수입하라고 제안해 '카톤주'라는 이름으로 '5% 과당주' 수출을 시작했다.
이렇게 한 단계 진보된 기술력 확보의 계기가 된 '5% 과당주'는 파키스탄, 태국, 대만까지 완제품 수출의 길을 열기도 했다.
8일인 오늘 창립 73주년을 맞은 JW중외제약은 수액 개발과 함께 오늘날까지 모든 것이 도전의 역사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적은 이익에 비해 엄청난 설비 투자, 물동 시스템이 요구되는 수액 사업은 국민 건강에 꼭 필요한 생명수를 만든다는 사명감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JW중외제약이 수액 생산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창업 초기부터 '생명 존중'의 가치를 강조했던 이기석 선생의 경영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이기석 선생은 "국민 건강에 필요한 의약품이라면 반드시 생산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회사를 운영했기에 채산성이 맞지 않는 수액 사업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JW중외제약은 지금까지도 수액을 비롯한 필수 치료 의약품 공급에 힘쓰면서 한국인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힘쓰는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