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목)

"치킨집 사장님도 '광탈'한다는 배민 치믈리에 시험에 도전해봤다"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일요일,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치킨 덕후'들이 잠실 롯데호텔에 모였다. 


단순히 "출출할 때 피자도 짜장면도 모두 마다하고 만날 치킨만 시켜 먹는다" 하는 아마추어(?) 수준의 덕후가 아니다. 


치믈리에 광고 속 김소혜처럼 코만 몇몇 킁킁거리면 "매콤하고 달콤해. BHC 맛초킹"이라는 말 정도는 나와주는 이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시험장에 입성했다. 


올해 치믈리에 자격 시험 신청자는 2만 7천여 명. 그에 앞서 진행된 온라인 모의고사 응시자 수는 57만여 명으로, 이는 수능시험 응시자 수와 맞먹는 수치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500명의 치킨 마니아들이 '제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 시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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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앞서 맛보기 게임이 진행됐다. 


탄산수, 커피, 감자칩 등 세 가지로 나뉜 리그에서 종이컵 한 컵 분량을 맛본 후, 어느 브랜드의 음료와 음식인지 맞추는 게임이었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는 기자는 커피 리그에서 스타벅스·커피빈·엔제리너스 아메리카노를 단박에 구분해 내 박수를 받았다. 


약간 우쭐해졌지만 나머지 탄산수와 감자칩 리그에서는 아쉽게도 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그냥 돌아서야 했다.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드디어 1교시 필기시험이 시작됐다. 실로 오랜만에 받아보는 시험지와 OMR 카드, 컴퓨터 사인펜을 보니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필기 영역은 총 30문항으로 이뤄졌다. 3개의 듣기 평가와 3개의 OX 퀴즈, 나머지는 모두 객관식이었다. 


나름 치킨 고수라고 자부했지만 2번 듣기 평가 문제에서부터 그만 기가 팍 죽어버렸다. 


2. 다음은 매장에서 치킨을 튀기는 소리이다. 잘 듣고 치킨을 총 몇 조각 튀겼는지 맞히시오.


① 6조각 ② 7조각 ③ 8조각 ④ 9조각 ⑤ 10조각


솔직히 경력 30년의 치킨집 사장님도 맞추기 힘들 것 같은 이러한 문제를 무슨 수로 풀어낸단 말인가. 


과연 치킨의 세계는 정말 넓고 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절로 겸손해지는 시간이었다.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응시자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난코스는 계속됐다. 


12. 다음 중 뜨거운 기름에 닭을 넣고 일정시간 튀겨낸 오늘날 '후라이드 치킨'의 탄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이 누구인지 고르시오.


① 일본에 정착한 네덜란드 상인 ②남아메리카 안덱스 산맥의 원주민 ③ 미국 농장에 거주한 아프리카 노예 ④ 몽골 징기즈칸과 시베리아 부족 ⑤ 기원전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거주하던 가산족


이렇게 웬만한 치킨 감별 능력자가 아니고서는 맞추기 힘든 문제들이 곳곳에 끼어 있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시험 문제 탓일까. 시작할 때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일찌감치 포기하고 엎드려 잠을 청하는 이도 포착할 수 있었다.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30분의 필기 시험 다음은 곧바로 2교시 실기 시험 시간이었다.


자격증 취득에서는 이미 멀어진 것 같으니 이제 남은 것은 종류별로 맛있는 치킨을 맛보는 것뿐이다. 


총 10가지의 서로 다른 치킨이 들어있는 상자가 나왔고,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치킨 한 입, 콜라 한입. 역시 치킨은 식어도 맛있다는 불변의 진리. 


한창 먹방을 찍다가 시험 응시자로서의 본분을 너무 잊은 것 같아 다시 마음먹고 펜을 들어봤다.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34. 텐더 치킨을 보기에서 고르시오. 


① 또봉이치킨 또봉이안심센터 ② 맘스터치 불사텐더 ③ KFC 치킨텐더 ④ 멕시카나 코코안심텐더 ⑤ 파파이스 치킨휠레 ⑥ 강정이기가막혀 기막힌안심텐더 ⑦ bhc 스윗텐더


39. 코리엔탈 깻잎두마리칩킨의 핫!씨푸드 치킨에 들어가지 않은 재료를 고르시오.


① 물엿 ② 양파 ③ 새우 ④ 홍합 ⑤ 고추씨 ⑥ 고춧가루


정말 만만치 않았다. 맛있게 먹었다고 해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필기도 까다로웠는데 실기는 더 어렵다니. 조용히 치킨이나 먹고 돌아가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실기시험까지 모두 마치고는 간단히 답을 맞히는 시간을 가졌다. 


곳곳에서 환호와 탄식이 뒤섞였다. 시험은 너무 어려웠고, 역시 쉽게 취득하는 자격증이란 세상에 없다. 


'치믈리에 자격증'은 올해 민간 자격증으로 공식 등록이 됐는데 작년 119명에 이어 올해는 몇 명의 치믈리에가 탄생할지 벌써부터 너무 궁금하다. 


가채점 결과 기자는 내년을 기약해야겠지만, 잘 봤다 싶은 참가자들은 8월 2일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쥐고 기다리도록 하자.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실컷 웃고 즐긴 후 시험장을 나서는데 불현듯 동네 치킨집 사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더운 여름에 한 달 내내 기름 앞에서 닭을 튀겨도 월 300만원도 채 벌지 못한다고 한숨 쉬던 사장님. 


최저임금이 높아지면서 사정이 더 안 좋아졌을 텐데 기분 전환 겸 내년에는 치믈리에 시험 신청서를 한 번 넣어보시라고 말씀드려야겠단 생각을 잠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