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성아 기자 = 해외에서 번 돈을 우리나라 독립운동자금으로 기부한 창업자가 있다. 바로 교보생명의 창업주 대산 신용호 회장이다.
신용호 회장은 어린 시절 공부를 좋아했다. 그러나 '광복'이라는 목표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독립운동을 선택했다.
1941년 중국 베이징으로 간 신 회장은 '북일공사'라는 곡물 회사를 설립했다. 설립 후 신 회장은 미곡장사로 번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댔다.
당시 신용호는 가족의 소개로 민족시인 이육사를 만나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을 돕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에 이육사는 '대사업가'가 되어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자본가'가 될 것을 부탁했다.
1946년 5월 우리나라로 귀국한 신 회장은 좋은 책을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출판사 '민주문화사'를 세웠다.
그가 처음으로 출판한 도서는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여운형 선생 투쟁사'였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신 회장은 섬유나 제철 등 다른 사업에도 도전했지만 한국 전쟁 악재가 겹쳐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전국의 도시와 농촌을 돌며 나라가 처한 현실을 직접 보고 나라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인력을 키우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신 회장은 오랜 고민 끝에 교육과 저축을 결합한 '교육보험'을 창안했다.
모두가 공부할 기회를 공평하게 가질 수 있도록 보험이라는 제도를 교육에 도입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가정에서도 학생들이 진학을 포기하지 않도록 자녀가 진학하면 보험료를 전액 돌려받는 보험을 만들었다.
또 그는 1958년 교보생명의 전신인 '대한교육보험회사'를 세워 '진학보험'이라는 세계 최고 학자금 마련용 저축성보험을 창안했다.
당시 진학보험은 높은 교육열과 맞물려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이 보험은 전쟁 후 궁핍한 한국 사회에 연간 10만여 명의 입학금과 학자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줬다.
신 회장의 사업의 자리를 잡자 그는 일본 도쿄 기노쿠야나 산세이도 서점보다 큰 서점을 만들고 싶었다.
1981년 그는 서울 광화문 사옥 지하 1층에 단일면적 세계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를 열었다.
2003년에는 교보강남타워에 축구장 넓이 2배에 달하는 교보문고 강남점을 개장했다.
신 회장은 비록 2001년 암으로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지만 강한 의지로 2년 동안 버텨냈다. 그는 이후 강남 교보문고 개장을 지켜보고 2003년 9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타계한 이후에도 교보생명은 꾸준히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편 신 회장이 나라 사랑으로 이룩한 교보생명은 '2018 광화문글판 대학생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해 상금으로 장학금을 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