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일제로부터 단돈 5달러에 소유권이 빼앗긴 문화재가 있다. 이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꼬박 걸린 시간은 102년.
국권 침탈의 아픔이 담겨있는 유서깊은 문화재가 다시 조국의 품에 안길 수 있었던 것은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남다른 '문화유산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연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당시 국가지정문화재를 관리하는 문화재청은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을 매입하려고 했다.
대한제국 공사관은 고종이 1989년 11월 자신의 내탕금과 황실자금으로 당시 거금 2만 5천달러에 매입한 건물로 대한제국말까지 주미공사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1891년부터 1905년까지 총 14년간 주미 공사관으로 운영됐다.
1882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조선이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의 압박에 벗어나려는 자주외교의 상징이자 국권 침탈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사적 산물인 셈이다.
하지만 1910년 한일강제병합을 앞두고 일제의 강압에 의해 대한제국 공사관이 단돈 5달러에 일본 정부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일본정부는 이를 미국인에게 10달러에 재매각했다.
일제에 빼앗긴 대한제국 공사관은 그 이후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실제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아프리카계 군인들의 휴양시설과 개인주택 등으로 사용됐다.
물론 조국 품에 돌아오기까지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문화재청이 대한제국 공사관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당초 매각의사를 밝혔던 건물주가 일부러 가격을 높여 부르는 등의 난관에 부딪혔다.
대한제국 공사관 매입이 무산될 위기도 있었다. 그때 나선 사람이 바로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었다.
현대카드의 해외 부동산 계약 경험이 있던 정태영 부회장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신뢰할 수 있는 부동산 매입 회사를 찾았고 정부와 소유주 사이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이와 관련 정태영 부회장은 "정부의 매입예산이 사전에 책정됐다는 사실이 현지까지 알려지면서 건물 가격이 껑충 뛰어올랐다"며 "건물을 되찾으려는 정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협상은 원활하게 진행됐고 현대카드는 대한제국 공사관 매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동산 수수료 3억원 전액을 부담하기도 했다.
우열곡절 끝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대한제국 공사관은 정부부처와 민간문화단체 그리고 전문기업인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102년만에 다시 조국에 안길 수 있었다.
5달러에 뺏긴 대한제국 공사관은 3년이라는 복원 공사 끝에 지난 5월 정식 개관했다. 대한제국 공사관 꼭대기에 태극기가 다시 게양되기까지 11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오수동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장은 "복원 과정에서 고증을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다"며 "옛날 사료를 다 찾아보고 거기에 충실하게 복원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몰래 대한제국 공사관이 조국의 품에 돌아올 수 있도록 도운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태영 부회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미대한제국공사관으로부터 받은 기념 메달 사진을 찍어 올리며 이렇게 글을 올렸다.
"몇년 전 현대캐피탈이 워싱턴 DC에서 벌인 '비밀스러운 작전 ^^'이 담긴 유일한 기념물이 될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메달을 만들어 멀리 한국까지 보내주셨는지 모르겠다"
평소 정태영 부회장의 문화유산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남다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