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최근 대기업 총수들의 '갑질' 사태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무색하다.
임원 사이의 경영권 다툼, 직원들을 다루는 안하무인한 태도, 각종 탈세 혐의 등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한 기업인의 청렴하고 모범적인 경영철학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제약업체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박사다. 그는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기업의 이윤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명을 가졌던 유일한 박사. 현재까지도 유한양행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는 그의 철학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1. 국민이 건강해야 나라가 산다
유일한 박사가 제약업에 뛰어들게 된 이유다. 어릴 적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유일한 박사는 31살이 되던 무렵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일제 식민치하에서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민족의 현실을 마주한 유 박사는 '병들지 않은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리고 1933년, 의사 출신 부인 호미리 여사의 도움으로 지금도 널리 쓰이는 국민연고 '안티푸라민'을 자체 개발했다.
2. 기업은 물건이 아닌 아이디어로 성장한다
유 박사는 일찍이 제품의 품질 뿐 아니라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적극 어필해야 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만병통치약'이라는 수식어로 광고하던 당시 제약사들과 달리 유한양행의 상징인 '버들표' 그림을 그려놓고 약의 용도 등 세세한 정보를 적어냈다.
또 마케팅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로 신문에 기업 이미지 광고를 냈다.
3. 기업은 유능하고 유익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유 박사는 생전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기업활동이 곧 교육사업이자 공익사업이었다.
귀국 후부터 유 박사는 개인적으로 장학사업을 펼쳤고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유한공업고등학교를 비롯해 각종 학교를 설립하는 등 인재 양성에 열정을 쏟았다.
"배우는 학생들이 곧 조국의 미래"라고 생각한 유 박사는 1970년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현 유한재단·유한학원)'를 만들었고 사후 전재산을 이 기금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4. 기업의 이익은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이 건전한 경영을 통해 사회에 헌신해야 한다는 점을 평생 신념으로 여기며 살았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이윤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지만 기업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고 단언했다.
1936년 유 박사는 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1939년 한국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해 주식 절반을 전 사원에게 무상으로 배분했다.
5. 투명경영과 성실 납세는 기업의 의무다
평소 유일한 박사는 "불이 나면 소방서에 불을 꺼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국민의 권리라면, 소방서에서 소방차를 사는 데 돈을 내는 것이 국민의 납세의무다"고 말했다.
그만큼 성실하고 정직한 세금 납부를 중요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단 한번도 납세 기한을 어긴 적이 없었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불법 정치자금을 정치인들에게 건네는 법이 없었으며 기업을 투명하게 경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6. 경영권 대물림은 하지 않는다
유일한 박사는 1969년 은퇴를 선언하며 자식이 아닌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기업을 키우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개인적 정실(情實)은 설령 가족일지라도 엄격히 구분돼야한다고 말했다.
유언장에서도 딸과 손녀를 위한 약간의 땅과 학자금을 남긴 것을 제외하고는 재산을 일절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