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어느 대기업에나 당연하게 존재하는 부서별 '임원 업무 보고'가 현대카드에서만큼은 '옛말'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업무 보고 중심으로 진행됐던 임원 회의를 없애버리고 이를 매달 이메일 보고로 대체했다.
대신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집단 지성이 필요한 이슈에 관해서는 '포커스 미팅'을 통해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의사 결정을 진행 중이다.
정 부회장은 기업 곳곳에 관습처럼 남아있던 뿌리 깊은 '꼰대 문화'를 없애고 혁신적인 사내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 예로 현대카드 직원들은 회의 시 PPT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워드나 엑셀, 이메일 등으로 간단히 보고서를 만든다.
2016년 정 부회장은 사내 'PPT 금지령'을 내려 PPT 디자인에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업무의 본질에 더 집중하자고 독려했다.
그는 당시 PPT 금지령 두 달이 지난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회의 시간이 짧아졌다", "논의가 핵심에 집중한다", "인쇄용지와 잉크 소모가 대폭 줄었다" 등의 후기를 전하기도 했다.
앞서 2014년에도 현대카드에서 한차례 '제로 PPT 캠페인'이 진행된 바 있으나, 당시 PPT 사용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고 사용 빈도가 줄어드는 정도에 그쳤다.
정 부회장이 다시 나서서 사내 모든 PC에서 PPT 제작 프로그램을 지우는 등 완강한 금지책을 써 실효성을 높였다.
직장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고정 점심시간'도 없어졌다.
정 부회장은 "같이 움직이는 공장이라면 모를까 사무직이 동일한 시간에 우르르 몰려나가야 할 이유가 없다"며 12~1시로 고정돼 있던 점심시간을 폐지했다.
그는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데 오래된 관습을 하나하나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직원들이 정해진 점심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 스케줄에 맞게 시간을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출퇴근 시간도 유동적이다. 7시부터 10시 사이에 30분 단위로 자신이 원하는 시각에 출근해서 8시간 동안 일한 뒤 퇴근하면 된다.
아울러 정 부회장은 '뉴 오피스룩'도 도입해 정장뿐 아니라 단정한 캐주얼 복장을 허용하면서 직원 들의 편의를 높였다.
물론 정 부회장의 이 같은 혁신적 움직임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자율성을 지나치게 강화하면 업무 환경에 혼란이 올 수도 있고, 직원들이 또 다른 차원의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실효성 없이 단순히 보여주기식 혁신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국내 대표 금융 업계에서 앞장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유의미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대카드에 꼰대 문화 대신 트렌디한 기업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정 부회장의 노력이 궁극적으로 기업 자체의 성장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