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6일 서울남부지법 김병철 영장전담 부장 판사는 "피의사실들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이와 관련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어 현 단계에서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이 청구한 조 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둘째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한진그룹 총수 일가 모두 구속을 피하게 됐다.
지난 4월, 조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을 계기로 수사당국이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불법과 비리를 겨냥해 전방위 수사에 나선 이래 조 회장 가족에게 구속영장이 청구(신청)된 건 총 4차례다.
하지만 4차례 모두 기각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검찰의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또 일각에서는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의 수사 동력이 사실상 끝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과 법원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 포착, 이와 동시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조양호 회장 일가가 받은 또 받고 있는 '범죄 혐의'를 모아봤다.
1. 조현민
경찰은 지난 4월 4일 '물벼락 갑질'로 논란을 일으킨 조 전 전무에게 폭행과 업무 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휴대전화 등에서 증거 인멸 정황을 확인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지만 검찰이 이를 반려했다.
검찰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를 이미 확보했다"며 불구속 수사를 지시했다.
검찰은 또 "영장 신청 이후 폭행 피해자들이 '조 전 전무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폭행 부분에 대해 공소 제기를 할 수 없게 됐다"며 "회의 중 유리컵을 던진 부분은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던진 것으로 법리상 폭행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 업무 방해 혐의 역시 조 전 전무가 광고주로서 업무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반려 사유를 설명했다.
2. 이명희
직원 폭행과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로 구속영장이 '두 번' 청구된 이 전 이사장도 법원에 의해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검찰은 지난달 4일 이 전 이사장을 상대로 특수 상해와 상해, 특수 폭행,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상습 폭행, 업무 방해, 모욕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같은날 오후 법원이 이를 기각했고, 법원은 "피의자가 합의를 통해 범죄 사실에 관한 증거 인멸을 시도하였다고 볼 수 없고, 그밖에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볼만한 사정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볼수 없는 점을 종합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법무부 산하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도 지난달 18일 이 전 이사장에게 출입국 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역시 기각됐다.
당시 법원은 "범죄 혐의의 내용과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에 비춰 구속수사할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3. 조양호
검찰은 조 회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와 약사법 위반,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등 5가지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만 의혹의 핵심이었던 수백억대의 상속세 탈루(세금 포탈) 혐의가 청구 사유에서 빠졌고, 이 때문이었는지 조 회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조 회장의 구속영장까지 기각되면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100%'를 기록했다.
또 덕분에 '오너 리스크'로 크게 흔들리고 있던 한진그룹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한편 검찰은 조 회장의 상속세 탈루 의혹에 수사력을 쏟을 전망이다. 앞서 검찰은 조 회장이 미납한 상속세를 완납할 계획이라고 밝힌 점과 공소시효 등 법리적 판단이 복잡하다는 이유에서 2일 청구된 구속영장에 상속세 탈루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검사 김종오)는 조 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살피면서 재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다.
조 회장의 상속세 탈루 혐의가 빠진 구속영장이 기각된 만큼 당분간 조 회장이 상속세를 납부하지 않은 경위와 상속세 규모 등 세금 탈루 혐의 수사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 회장이 아버지인 故 조중훈 전 회장의 외국 보유 자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상속세를 내지 않는 의혹에 대해 서울지방국세청의 고발장을 받아 수사를 벌여왔다. 조 회장과 그의 형제들이 납부하지 않은 상속세는 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