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한국 영화 사상 두 번째 '천만 관객' 영화이자 '한국전쟁'을 다뤘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개봉).
한국전쟁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어떻게 '광기'에 물드는지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남한에만 유리하게 재해석하지 않아 균형 잡힌 전쟁영화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영화 '대립군'·'좋지, 아니한가' 등의 연출을 맡은 정윤철 감독에 의하면 '태극기 휘날리며'의 밸런스가 무너질 뻔한 위기가 있었다.
JTBC '#방구석 1열'에 출연한 정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를 제작할 때 투자자를 제대로 찾지 못해,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적이 있다고 한다.
연출을 맡은 강제규 감독의 시나리오를 본 국방부는 '수정사항 3개'를 요구했다.
가장 먼저 요구했던 부분은 극 중 장동건(이진태)과 원빈(이진석)이 군인들에 의해 강제징집되는 장면을 '자원입대'로 수정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정권의 강제 징집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기에, 강 감독은 수정을 거부했다.
이어서 국방부가 요구한 사안은 우리네 역사에서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로 기록된 '보도연맹 사건'을 영화에서 삭제해달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故 이은주는 '쌀'을 받기 위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보도연맹은 '좌익'으로 분류되던 이들을 우익으로 전향시켜 '반공 사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 정권이 1949년 만들어 관리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원들이 다시 좌익으로 전향할 것을 우려했고, 반공청년단원들을 조직해 무차별적으로 '보도연맹원'을 학살했다.
명부에 이름만 적혀 있어도 즉결심판을 빌미로 죽창으로 찔렀고, 총살했다. 이 보도연맹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가 자국민을 죽인 최대·최악의 학살로 평가된다.
강 감독은 역시 이것을 영화에서 제외해달라는 국방부의 지시를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요구는 이진태가 남한군으로 활동하다 월북해 북한 깃발부대 선봉장이 되는 내용을 없애라는 것이었다.
남한군의 월북 또는 북한군의 탈북은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국방부는 대한민국의 군인이 북한군이 되는 내용을 불편하게 여겼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윤종신은 "그럼 선전영화랑 거의 비슷하지 않나?"라고 물었고, 정 감독은 "80년대 국군홍보 프로그램 '배달의 기수'가 되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세 가지 요구를 모두 거절한 강 감독은 결국 국방부에 총 한 자루도 협조받지 못했고, 제작비 30%~40%를 절감할 기회를 날렸다.
그러나 자체 제작을 통해 기획 의도를 모두 영화에 반영했고, 영화는 대박이 나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성공을 거뒀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총 관객 1174만6135명을 동원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