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최해리 기자 = 현대중공업이 5조 5,000억원 규모의 정부 공공발주에 참여할 수 있을지를 놓고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대로라면 내년말까지 정부 발주 사업에 원천 참여할 수 없지만, 국내 조선업 전체를 위해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배제될 경우 정부의 공공 발주 계획 자체가 뒤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울산시와 현대중공업 협력업체들을 중심으로 "조선경기가 살아날 때까지만이라도 현대중공업의 공공선박 입찰참가 제한을 유예해 달라"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 회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글을 올려 국민청원도 진행 중이다.
이들은 "현대중공업의 지은 죄는 밉지만 위기의 조선산업을 살려서 피폐해진 지역 경제를 살리고, 구조조정을 막고, 일자리 지키고, 노동자도 지킬 수 있도록 현대중공업을 조선산업 발전전략에 꼭 포함 시켜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 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초 '조선산업 발전전략' 발표를 통해, 올해와 내년에 걸쳐 5조5000억원 규모의 공공발주를 추진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방위사업청에서 올해와 내년 군함 10척 이상, 해양수산부에서 올해와 내년 순찰선 등을 각각 6척, 7척을 발주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는 현대중공업의 경우 '부정당업자'로 등록된 만큼 현행법에 따라 공공발주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정당사업자는 정부 발주 사업에 입찰·계약 관련 서류를 허위로 꾸미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사업자 등을 뜻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76조'에 따르면, 부정당업자로 지정될 경우 최소 2개월에서 최대 2년까지 국가 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의 입찰 자격이 제한된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3년 '한국수력원자력 뇌물 사건'에 연루되며 2019년 11월까지 2년간 군함 등 국가가 진행하는 공공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당시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을 수주하자 현대중공업 전 임원은 수출용 원전에 사용할 부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에게 뇌물을 건넸다.
문제는 군함과 잠수함 등 특수선 분야의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현대중공업을 배제할 경우 정부가 발표한 5조5000억원 규모의 공공발주 물량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대형 군함의 경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만이 건조 경험이 있는데, 현대중공업이 빠질 경우 대우조선으로 일감이 몰릴 수 있지만 대우조선도 제대로 물량을 소화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각 조선사의 도크(dock) 스케줄상 도저히 정부 물량을 대우조선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고, 특히 현대중공업만이 할 수 있는 군함과 잠수함 등의 설계기술이 있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을 원천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현대중공업도 정부 물량 일부를 나눠 맡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현대중공업이 배제될 경우 정부 발주에 대한 대우조선 단독 입찰에 따른 수의 계약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발주에 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진행될 경우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세금 낭비 논란이 뒤따를 것이란 분석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러나 "법적 결정이 나왔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으로선 공식적으로 할 얘기가 없고 그저 선처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