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문재인 청와대 출범 1년을 맞은 오늘(10일) 중앙일보에 칼럼 한 편이 실렸다.
이정재 칼럼니스트가 쓴 이 논설의 제목은 '경제는 정신 승리로 안 된다'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1년 성적표 중 경제 분야가 가장 나쁘다고 지적하며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만둘 줄 알아야 한다"는 부제를 덧붙였다.
그런데 해당 칼럼이 올라오자 일부 누리꾼들이 그가 쓴 부제에 밑줄을 치며 "이정재 작가님, 오늘 새로운 신작을 내셨군요"라고 조롱 섞인 비난을 가했다.
현 정부의 경제지표를 비판한 이 칼럼은 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소설'로 치부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제19대 대선을 20여일 앞둔 2017년 4월 13일 이정재 칼럼니스트가 쓴 '한 달 후 대한민국'이라는 칼럼에서 시작된다.
당시 이 칼럼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와 선거기사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다.
이정재 칼럼니스트는 소설 형식을 차용해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문 대통령의 당선 한 달 뒤를 가상으로 그려냈다.
필자는 처음부터 '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라고 단언했지만,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뒤덮인 이 칼럼은 엄청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칼럼에서 그는 미국의 북한 폭격으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도래했다고 가정한다.
그가 생각한 대한민국의 대선 한 달 뒤는 불안감에 휩싸인 시민들이 생수, 라면 사재기에 들어가고 문 대통령은 친북 정책을 펼치다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축하 전화조차 받지 못한 모습이었다.
북한의 선제 폭격이 시작되어도 대통령은 "대응 사격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해 김관진 안보실장이 사표를 던지고, 국방부 장관까지 등을 돌린다.
이러한 한반도를 묘사하며 이정재 칼럼니스트는 "나라는 절체절명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문재인의 청와대는 어쩔 줄 모르고 그저 분노를 터뜨릴 뿐이었다. 누군지도 모를 상대를 향해"라고 썼다.
그러면서 말미에 "이번 투표야말로 정말 국가 존망이 내 손에 달린 것을 수 있다"고 적으며 특정 대선 후보를 노골적으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이 칼럼이 게재되자 누리꾼들은 "이건 공포마케팅 아니냐", "단편 소설을 써놨네", "작심하고 웃기기로 했나보다", "선거법 위반이다" 등 맹비난을 쏟아냈다.
이정재 칼럼니스트의 우려(?)처럼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다면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됐을까.
결론은 아니다. 오히려 한반도는 유례없는 평화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최초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남한 땅을 밟았고, 이날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앞으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평화 선언으로 정상회담을 마무리했다.
북한은 핵실험장 폐기를 약속했으며 6월 초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3명도 석방됐다.
남북에 완전한 평화가 깃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칼럼니스트가 소설로 써내려갔던 한반도 전쟁 위기와는 사뭇 다른 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향력 있는 굴지의 언론사에서 '상상'이라는 이름으로 쓴 이 칼럼이 더욱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 취임 1주년인 오늘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에서도 이정재 칼럼니스트는 문 대통령을 '정신 승리 끝판왕'이라 칭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번엔 상상이 아닌 각종 경제지표를 제시하며 최저임금 1만원으로 서비스 업종이 직격탄을 맞았고, 취업자 수도 지난해보다 11만 6천명으로 줄었다고 지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문재인 청와대도 일자리와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국민이 체감하기엔 미흡했다고 자평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꼬집는 이번 칼럼에서 대기업 위주의 불이익만 강조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문재인 청와대는 처음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남기고 간 가계부채와 친기업 중심의 불공정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했다.
'사람중심경제'를 기치로 삼아 최저임금이 인상됐고, '재벌저격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중심으로 적폐 청산이 시작됐다.
질 낮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가계 실질소득이 9분기 만에 증가세로 전환된 점, 소득분배지표가 8분기 만에 개선세로 돌아선 것 등의 성과를 무시하기 어렵다.
이번 칼럼에 독자들이 또 한 번 '신작소설 나왔다'고 조롱을 퍼붓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누리꾼은 "중소상인 힘든 건 임대료 상승. 가맹점 상대 갑질하는 본사도 잘 살펴보라. 현 정부 욕하려고만 하니 최저임금만 보이는 거다"라며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1년 전 글이 '성지순례지'로 떠오르고 그날의 비난이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현 상황.
그만큼 독자들은 중앙일보가 '국내 3대 언론사'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도록 공정하고 사실에 기반한 분석을 내놓길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