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나영 기자 = "우리 그만 헤어지자". 언제 들어도 비수가 돼 심장에 꽂히는 말이다.
이 사람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마음이 무덤덤해진 때가 되면 모든 연인들은 가지각색의 이유를 들어 헤어짐을 말한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보내주는 거야', '지금은 연애를 할 때가 아닌 것 같아', '너는 내게 너무 과분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 생겼어', '더 이상 설레지 않아' 등.
이별을 말하는 이유는 너무도 다양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대를 가장 힘들게 하는 말은 "조금만 시간을 갖자. 생각 좀 해볼게"라는 말이다.
완전히 남이 된 것도, 그렇다고 계속 사귀는 사이도 아닌 애매한 관계가 되는 시점.
오지 않는 연락을 참고 또 참으며 기다리다 폭발한 순간, 우리는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 대화명 또는 SNS를 염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 딱 맞아 떨어진다. 대부분은 바로 '이 시점'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 때문.
두눈으로 연인의 새로운 연인을 확인한 순간.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며 슬퍼하는 것도 잠시 우리는 '상대가 바람을 피웠다'고 확신하며 배신감에 치를 떤다.
실제로 '이별'을 경험한 이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중 하나는 헤어진 연인이 나보다 먼저 다른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독 전 여친, 전 남친이 이별 후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 새로운 사람을 만났는지에 집착한다.
이별 후 일주일 만에 다른 사람을 만난 이들에게는 "바람피운 게 확실해"라는 비난이 들끓는다.
오랜 기간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 연애를 쉬고 있는 이들에게는 "아직도 전 여친(남친)을 잊지 못했나 봐. 진짜 사랑했나 보다"라는 동정여론이 인다.
사안이 이러하다 보니 요즘 연애 상담을 하는 친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환승 이별', '환승 연애'가 됐다.
여기서 '환승 이별'은 연인과 헤어지자마자 다른 연인을 만나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타는 '환승하다'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마치 대중교통을 갈아 타듯이, 헤어진 후 시간을 오래 갖지 않고 다른 연인을 만나는 것을 뜻한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3년 사귄 남자친구에게 환승이별을 당해 너무 분하다는 한 여성의 사연이 올라와 누리꾼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글쓴이는 "남자친구가 한 달 전 전화로 '우리 헤어지는 건 아니고 생각할 시간을 갖자. 서로에 의미를 찾은 사람이 먼저 연락하자'고 말했다"며 말문을 텄다.
이어 "그 날 바로 인스타랑 페북 다 비활성화 했다가 연락 꾹 참고 일주일 만에 다시 들어갔는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며 "카톡 프로필까지 그 여자로 도배했더라구요"라고 한탄했다.
덧붙여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다른 여자를 만난 이 남자.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왜 저는 한달째 이 이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바람을 피운 거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전 남친에게 욕이라도 한 번 시원하게 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애처로워 보일까 봐 하지 못하는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이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한 달 동안 살이 5kg이나 빠졌다는 글쓴이는 "이 남자 정말 제 생각은 하나도 안날까요? 제 앞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잠시 시간을 갖자던 건 모두 거짓인가요? 저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해당 사연은 공개 직후 수많은 누리꾼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 당시 많은 이들이 댓글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같은 아픔을 서로 위로했다.
대부분은 "끝까지 좋은 사람이척 다하더니 환승 이별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나고 억울하고 분통해서 잠이 안 오더라구요", "한동안 힘들었는데 이런 인간 미리 알고 거른 게 좋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등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환승 이별'을 당한 이들이 이토록 분노한 포인트는 그 상대가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만 몰래 이별을 준비하고,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쉽게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환승 이별'은 그 시기를 두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무조건 바람을 피운 것'이라고 명명 짓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상대방의 '환승 이별'이 억울하고 분통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면, 당신의 속을 뻥 뚫어줄 '사이다' 연구 결과 하나를 소개한다.
사우스 알라바마 대학의 조슈아 포스터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바람을 피워 새로운 연인을 만난 이들은 쉽게 이별을 맞이하는 경향을 보였다.
보통 '나를 버리고 갈 만큼 그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닐까요'라는 생각과 달리 전 연인과 비교도 훨씬 많이 하고, 쉽게 사람을 만난 만큼 새로운 사랑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여겨 또 다시 바람을 피울 확률이 높았다.
한번도 바람 안 피운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피운 사람은 없다는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정말 상대가 바람을 피워 환승 이별을 한 것이라면 지금 당장은 행복해보여도 그 끝은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떠났다는 말 대신 끝까지 비겁했던 옛 사랑을 잊고 다가오는 새로운 사랑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