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우리은행이 고위공직자나 VIP 고객에게 청탁을 받고 이들의 자녀, 친인척 등을 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금수저 리스트'를 관리한 것인데, 채용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이광구 전 은행장은 "은행을 위한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지난 2일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는 우리은행 이광구 전 행장과 남모 전 국내부문장, 현직 인사담당 임직원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전 행장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신입사원 공채에서 1차면접 불합격권에 있던 지원자 37명을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합격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서류전형, 1차 면접까지 통과한 지원자 37명 중 31명은 임원 면접을 거쳐 최종합격됐다.
합격자들은 대부분 금융감독원, 국가정보원 등 고위공직자나 우리은행과 고액거래를 하고 있는 VIP 고객의 친인척인 것으로 검찰은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행장은 지난 3년간 우리은행 내부에 'VIP 친인척 명부'를 작성, 관리하며 이들을 합격시키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남 전 부행장 등 일부 임원 역시 지인의 부탁을 받아 지원자를 공채에 합격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행장의 지시를 받은 인사팀 직원들은 관리 리스트에 있는 지원자 서류 합격란에 '점'을 찍어 구분했다.
만약 청탁 명부에 있는 지원자가 서류심사나 1차 면접에서 떨어지면 인사 실무자는 이를 이 전 행장에게 보고, 다시 이 전 행장이 탈락자를 합격시키라고 지시하는 방식으로 불법채용이 이뤄졌다.
때문에 이미 서류에 합격한 지원자 몇몇이 불합격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채용비리 사건에서 탈락자 점수를 조작하거나 미리 답안을 유출시키는 방식을 사용해왔다면, 우리은행의 경우 이 전 행장이 다이렉트로 합격을 지시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러나 이 전 행장은 검찰 조사에서 "은행을 위한 일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채용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우리은행 임원들이 금품을 받는 등 직접적인 대가관계는 드러나지 않았다"면서도 "우리은행 입장에서 잘 보여야하는 기관이나 탄탄한 거래처의 청탁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은 이번 사건을 공정하게 경쟁하고자 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으로 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우리은행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지원자를 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억울하게 탈락한 지원자 구제 및 부정합격자 추후 조치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우리은행 관계자는 "법원 판결에 따라 결정이 날 것 같다"고 밝혔다.
부정합격자를 직위 해제하거나 피해를 본 지원자를 구제할 내부 규정이 따로 있냐는 질문에는 "지금 상황에서는 말씀 드릴 수 있는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