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인간은 지구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다. 인간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영화 '킹스맨'에 등장하는 대사다. 인간이라는 개체가 지구를 숙주로 삼아 침투했고, 결국 숙주인 지구를 망가뜨린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정답 역시 '킹스맨'의 대사 안에 있었다.
"바이러스가 숙주를 죽이거나, 숙주가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어떤 과정을 거치든 결과는 동일하다.
우리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로 지구가 병들고 있다는 증거를 지구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현상이 이상기온이다. 최근 북반구에 불어닥친 기록적인 한파, 남반구를 뒤덮은 살인적인 무더위가 바로 그 증거다.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이상 현상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비단 인간만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기온이 오르고 환경이 변화, 파괴되면서 동물들도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10일 미국 국립해양대기국과 호주 퀸즐랜드 환경유산보호부 공동연구팀은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호주 연안에 서식하는 '초록바다거북'을 조사해본 결과 암컷 비율이 무려 99%가 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인간과 같은 척추동물의 성별은 성염색체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거북이를 포함한 파충류는 알의 부화 환경이 영향을 미쳐 그 개체의 성이 정해진다.
즉 알이 부화할 때 온도가 높으면 암컷이 더 많이 태어나고, 온도가 낮으면 수컷이 더 많이 태어나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 1990년대 이후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온이 상승하면서 바다거북의 성비 불균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나 초록바다거북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연구진의 조사 결과 완전히 성장한 성체 초록바다거북은 전체 중 99.8%가 암컷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보다 조금 더 어린 준성체 초록바다거북의 경우 99.1%가 암컷이었다.
연구진들은 이 추세가 지속되면 초록바다거북의 개체 수가 큰 폭으로 줄거나 완전히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오는 2050년경에는 전 세계 해양생물의 86%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할 수 있다고 추측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연을 내뿜고 발전소를 가동하며 산림을 개간하는 인간들. 그리고 자원을 물 쓰듯 펑펑 쓰며 낭비하는 인간들.
아기 거북이의 99%가 암컷인 이유는 바로 인간 때문이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