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데이트 폭력 가해자들은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그래서 그런 것일까. 최근 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여성 긴급전화로 접수된 데이트 폭력 상담 건수는 1,600여 건에서 4,100여 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홍영오 연구위원은 '성인의 데이트폭력 가해요인'이라는 논문을 통해 남성 중 80%가 데이트 폭력 가해 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순간 곧바로 관계를 정리하고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않나"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데이트 폭력 피해자 중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명분과 폭력적 행동을 합리화, 내면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로 날 사랑해서 그럴 거야", "어떻게 보면 폭력도 애정 표현 중 하나야"라는 식이다.
이같은 심리적 현상은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공포심을 유발한 상대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현상으로, 가해자 혹은 범죄자에게 동화 및 동조하는 비합리적인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이 나타나는 심리학적 원인은 무엇일까.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간혹 가해자가 친절한 모습을 보이면, 피해자는 이를 유일하게 생존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에 따라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가해자의 폭력적 행동을 합리화한다. 이것이 생존과 안정의 욕구로 인해 증폭되면서 가해자에 대한 증오보다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데이트 폭력의 상황에서 이같은 심리적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연인 관계에서 폭행을 당한 사람들은 폭력이 잦을수록 연인의 애정 표현과 친절한 태도에서 더 큰 사랑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합리화가 지속, 심화되면서 "날 사랑하기 때문이야. 폭력도 애정 표현이야"라고 여기는 것이다.
정신분석학 전문가이자 저자 샤히다 아라비(Shahida arabi)의 논문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의 합리화 현상은 생화학적 작용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는 논문을 통해 "관계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부당하거나 비일관적으로 행동하면서 이따금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상대방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런 사람들의 비일관적인 보상이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들고,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코르티솔 분비를 촉진하며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약중독자에 비유한다.
찰나의 쾌락에 중독돼 우리 몸을 갉아 먹는 마약을 끊지 못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폭력을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