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한국 근현대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다룬 '실화' 영화 '1987'이 개봉 당일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화 '1987'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경찰의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22살 서울대생 박종철 군의 죽음을 소재로 한다.
그의 죽음은 전두환 군부정권에 더욱 반발하게 된 기폭제가 됐고,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다.
영화 '1987'의 특징은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람들이 스토리 곳곳에서 본명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장준환 감독은 역사적인 사건을 '실화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수천 장의 자료를 찾아 철저한 고증을 토대로 대본과 세트장을 만들었다.
마치 80년대에 온 것 처럼 공기까지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1987'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 박종철 열사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종철 열사가 경찰에 불법 체포돼 치안본부(경찰청의 옛 이름)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사망했다.
박종철 열사가 구속영장도 없이 불법 체포된 이유는 학생 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인 박종운의 후배였기 때문.
당시 경찰은 박종운의 행적을 알아내기 위해 박종철 열사에게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온갖 고문을 자행했고, 23살 대학생에 불과했던 박 열사는 모진 고문 끝에 숨을 거뒀다.
박 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은 한 인터뷰에서 "실제 박종철 열사가 썼던 안경을 여진구가 쓰고 나온다"고 전해 기대감을 높였다.
2. 이한열 열사
1987년 6월 9일 연세대 경영학과 86학번 이한열은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때 전경이 던진 최루탄이 이한열의 뒤통수를 가격했고, 그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결국 그는 민주화를 보지도 못하고 7월 5일 새벽녘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3. 박처원 내무부 치안본부 치안감
박종철이 사망한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은 시신을 화장하고 사건을 묻으려 한다.
또한 박 처장은 기자들 앞에서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며 거짓 기자회견을 연다.
그의 거짓 기자회견을 보고 분노하는 민심에 결국 나흘 뒤 고문 사실을 인정했다.
1987년 5월 구속된 뒤 대법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배우 김윤석은 이마 라인을 'M자형'으로 깎고 마우스피스를 끼는 등 많은 시도와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4. 최환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부장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박종철의 사망을 덮으려는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물고문에 의한 사망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최환 공안부장은 "1987년 1월 14일 밤 8시쯤 홀로 야근을 하던 중 경찰청 대공 수사관 2명이 들어와 결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관들이 들고온 보고서에는 '박종철'이라는 학생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최환 공안부장은 직감적으로 고문에 의한 사망하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체보존명령'을 내렸다고 회상했다.
5. 윤상삼 동아일보 사회부 사건팀 기자
대검찰청 공안4과장 이홍규의 발언을 취재한 첫 특종기사(중앙일보)가 보도된 뒤, 윤상삼 기자는 부검의를 설득해 '물고문'과 관련된 양심 증언을 받아냈다.
당국의 축소조작음모를 폭로한 기사로 한국기자상을 받았으며 1999년 4월 간암으로 별세했다.
6. 김정남, 이부영 민주화운동가
1987년 3월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은 2~3월에 걸쳐 친구 김정남에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담은 쪽지를 작성했다.
그 쪽지에는 박종철을 고문치사하는 데 관여한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함께 은폐·조작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적혀있었다.
당시 전병용 교도관을 통해 김정남에게 전달했고, 이 쪽지는 천주교 김승훈 신부에 의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7. 한병용(한재동, 전병용)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당시 영등포 교도소의 교도관이면서 민주화 운동에 우호적인 활동을 했던 한재동 교도관과 전병용 교도관의 역할을 한 영화 속 인물 한병용 교도관.
박 군을 죽인 경찰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당시 수감 중이던 이부영에게 알렸고, 쪽지를 외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당시 영등포 교도소 보안계장이던 안유 씨는 2012년 박종철 25기 추모식에 참석해 "덤터기를 쓴 고문경찰 두 명이 교도소에 수감된 뒤 경찰 수뇌부들이 찾아와 '입 닥치고 있으면 1억 원을 주겠다'고 회유하고, 가족을 내세워 협박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고백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