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던 나의 여사친이 어느 순간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소와 똑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거나 카페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나의 기분이 다르다.
언젠가부터 여사친의 눈, 코, 입이 너무 달라 보인다. 빤히 그리고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연말이 다가오자 괜스레 설레는 탓일까. 아니, 기분 탓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여사친을 좋아하게 됐다.
그때부터였을까. 너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애태우며 밤새 메시지를 기다린 날이 많아졌다.
함께 있을 때는 '우리'인 것 같지만, 떨어져 있으면 연락도 잘 안 되고 '남남'인 것만 같은 사이가 너무 싫다.
더이상 진심을 감출 수 없어 용기를 내기로 했다. 너의 친구가 아닌 남자친구로 곁을 지키고 싶었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 너를 좋아해"라고 고백했다. 그러자 여사친의 눈이 떨린다. 너무 감동해서였을까.
머뭇거리던 여사친은 살얼음과 같던 침묵을 깨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
아니, 싫다면 싫다고 말하지 친구로 지내자니 너무 가혹했다. 한 번 좋아한 이상 앞으로 친구로서 지내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여사친의 곁을 맴돌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경험을 해봤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지도 모른다. 확실한 답변을 주지 않는 상대방 때문에 애를 태워봤다면 말이다.
최근 해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다름 아닌 'Friendzone'. 직역하면 '친구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새롭게 떠오른 연애 현상을 방증하듯이, 상대방을 친구의 영역에 두고자 하는 마음 또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보통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한 사람이 상대방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은 이성으로 바라보며 좋아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Friendzone'이라는 단어는 명사와 동시에 동사로도 쓰인다. 즉 '친구의 영역에 두다'라는 표현인 것이다.
흔히 친한 남녀 사이를 의심해 "걔 누구야?"라고 물어봤을 때, "아, 그냥 친구야"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속내 혹은 심리는 간단하다. 이성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잃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향유하고 싶어 'Friendzone'을 유지하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수많은 친구들과 'Friendzone'을 유지한다면 그야말로 '어장관리'가 따로 없는 셈이다.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말로 상대방을 위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소중한 관계와 그 추억까지 해치는 짓이다.
상대방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거절은 칼같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대방을 희망 고문 하고 싶지 않다면 단칼에 거절하자.
또한 당신이 이러한 상황을 당했다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좋겠다. 헛된 기대가 당신의 마음을 좀먹게 될지 모른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