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다래 기자 = 코흘리개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여러 상황극을 즐기며 친구들과 재미를 나눴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귀엽기만 한 다음 놀이들은 사실 나 혼자만 즐거운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또래 초딩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똑같은 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정말 정말 유치하지만 초딩들에게는 세상 진지하게 재밌던 상황극 놀이를 모아봤다.
잠시 내 초딩 시절을 추억하며 그때의 내 모습을 보물상자에서 슬쩍 꺼내보자.
1. 의자 두 개 위에 이불 덮고 아지트인 척
초등학교 시절에는 나만의 아지트가 무엇보다 갖고 싶었다.
우리는 의자 두 개를 연결해서 또는 빨래 건조대 위에 이불을 덮고 그 속에 들어가 노는 걸 좋아했다.
2. 뚜껑에 음료수 넣고 소주 마시는 척
어른들이 작은 잔으로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 신기했던 초딩 시절 우리는 병뚜껑에 음료를 따라 마시며 어른 흉내를 냈다.
3. 보도블록 선 밟으면 죽는 척
그 당시 초딩들은 집을 갈 때도 함부로 쉽게 가지 않았다.
친구들끼리 혹은 혼자 길을 갈 때도 보도블록 선을 밟지 않거나 같은 색만 밟으며 정말 어렵게 집으로 향했다.
4. 국그릇에 콜라 붓고 사약인 척
엄마와 함께 사극을 볼 때면 항상 마지막회는 희대의 악녀가 사약을 먹고 죽는다.
하얀 국그릇만 보면 콜라를 붓고 그 모습을 따라 하며 바닥에 쓰러지곤 했다.
5. 어깨에 이불 끌고 다니며 공주인 척
엄마 화장품으로 몰래 화장을 해보던 초딩시절 여자애들은 이불을 어깨에 걸치고 시상식에 온 듯한 워킹을 시연했다.
초딩시절 우리에게 '이불'은 어떤 놀이도 만들어 낼 수 있는 '필수템'이었다.
6. 바닥에 물그릇 놓고 할짝대며 강아지인 척
강아지가 물을 먹는 모습이 신기했던 우리는 굳이 바닥에 물그릇을 놓고 강아지처럼 엎드려 물을 마셨다.
먹기 어렵지만, 굳이 그렇게 먹었다.
7. 혼자 숨참고 납치당한 척
어린 시절 누구나 괜히 숨을 참아가며 초를 센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서 고생하는 걸 우리는 참 좋아했다.
8. 바지 한쪽에 두 다리 넣고 인어공주인 척
잠옷 바지 한쪽에 굳이 두 다리를 집어넣어 인어공주인 척 상황극을 즐겼다.
다리를 파닥거리며 헤엄치기도 하고 콩콩거리며 집안을 휘저었다.
9. 티셔츠 벗다 머리에 끼이면 수녀인 척
옷을 벗으면 머리에 꼭 티셔츠가 꼈다.
유아기 시절엔 당황스러운 일도 초딩이 되면 수녀처럼 상황극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다래 기자 darae@insight.co.kr